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세월이 오래 지났다’ 하는 걸 ‘머리가 모시바구니가 되었다’ 고 말한다. ‘모시바구니’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모시를 담는 바구니’, 또 하나는 ‘모시로 짠 바구니’다. ‘모시’란 ‘모시풀’이 줄어든 말인데, 이건 밭에서 재배한다. 높이가 2m정도로 잎은 달걀모양이고 뒷면에는 잔털이 있으며 여름에 수꽃은 황백색, 암꽃은 담록색으로 핀다. 뿌리줄기는 나무의 성질을 띠어 땅속으로 벋어 번식하고 줄기의 껍질은 섬유를 채취해서 옷감 등으로 쓴다고 한다. 충남 한산지방에서 나는 ‘한산모시’는 유명하다. 빛깔이 흰머리색이다. 지난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모시적삼·모시치마·모시저고리·모시두루마기 등등 이 피륙으로 만든 옷을 안 입어 본 사람이 없을 정도다. ‘바구니’는 대나무나 싸리나무 등을 쪼개어 둥글게 짜서 속을 깊숙하게 만든 그릇이다. 다시 말해 가늘게 쪼갠 댓개비나 싸리개비로 만든 그릇이다. (여기서 ‘개비’란 ‘성냥 한 개비, 담배 두 개비’ 등으로 쓰는 말이다.) 그래서 빛깔은 대나무처럼 연갈색이거나 싸리처럼 황갈색 또는 흑갈색이다.

마을회관 앞에 있는 팔각 정자에 동네할배들이 연신 부채를 부쳐대며 모여 있다. 회관 안의 에어컨 있어 시원한 경로당방은 할매들이 차지하고 있어 내외하느라 한데 섞이질 못한다.

“내남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머리가 인제 하나같이 모시바구니가 되었구먼.” 생골양반 말에 옆의 할배가 자신의 머리를 매만지며, “모시바구니?” 하고 반문한다. 그러자 그 옆의 할배가 “아따 이 사람, 여태꺼정 모시바구니도 모르는가. 닭이나 새의 먹이가 모시 아닌가. 그 모시를 담는 바구니 말여.” 하고 핀잔을 준다. 이에 여러 말들이 예서제서 끼어든다. “모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우리 옛날에 닭 많이 멕였을 때 이 닭 모시로 쓸려고 곡식 뒷묵(뒷목)은 다 따로 챙겨 놨지.” “그리구 그걸 모시바구니에 담아 닭한테 한 웅큼씩 뿌려 줬잖어.” “말 말어 우리는 모시로 쓸려고 평밭에다 아주 모시작물을 재배했잖여.” “자네 어르신 그때 닭뿐 아니라 꿩 잡아 기르고 오리 거위 하며 온갖 날짐승 다 길렀지 왜.” “나 그때 거위한테 물려서 혼났어.” “참 옛날얘기지. 그렇지만 지금은 어디 모시바구니가 있는감. 사료를 푸대로 사다가 소·양·염소·말·닭·돼지 등에게 먹이로 주고, 식물성인 작물 대신으로 가끔 동물성재료를 먹이로 준다지 않는가.” “그건 가축의 먹이 얘기고 날짐승이나 새에게 먹이로 주는 건 모시라고 해서 곡식이나 신선한 풀을 줬잖여.” “그런데 시방은 워디 그려. 닭사료, 비들기사료 해서 다 사다가 모시로 쓰고 있지.”

이때 생골양반이 점잖게 나선다. “듣자듣자 하니 참 가관들이구먼. 여보게들 그 모시는 ‘모이’여. 모시는 우리 지방에서 쓰는 사투리란 말여, 내가 말하는 모시바구니의 ‘모시’는 옛날에 우리가 다 입어봤던 ‘모시’라는 피륙으로 지은 ‘모시옷’의 ‘모시’란 말여. 그리구 ‘모시바구니가 됐다’는 건 ‘머리가 하얗게 되도룩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이구.”

이에 멋쩍어들 하며 머리를 긁적이고 나서 이내 이 ‘모시바구니’에 대한 생각이 두 패로 갈린다. 한 패는, 모시는 흰머리색이고 바구니는 갈색이다. 여기서 ‘모시바구니’를 ‘모시를 담는 바구니’라고 한다면, ‘흰머리색의 모시를 갈색의 바구니 속에 담는다.’는 것’이 되고, ‘모시로 짠 바구니’ 라면, ‘바구니를 흰머리색의 모시로 짰다.’라는 것이 된다. 이로 보면 ‘모시바구니’를 ‘모시로 짠 바구니’로 보는 것이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세월이 오래 지났다.’라는 뜻에 부합된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 하면, 흰색이 갈색 속에 묻히는 것 보다는 ‘흰색으로 보이는 바구니’가 ‘늙어 하얗게 된 머리’와 흡사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하지만 또 한 패의 생각은 다르다. 즉, 갈색 얼굴에 얹혀서 하얗게 솟아있는 머리는 마치 ‘모시를 담은 바구니’처럼 보이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하는 것이다. 듣고 있는 제3자의 머리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생각들이다.

그러고 보니 둘 다 하나 둘이 존재한다고 여겨진다. 즉, 둘 다 일리가 있다는 말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모시바구니들이 아주 진지하게 제 각기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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