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 올여름엔 문화바람을 쏘이며 문화피서(文化避暑)를 하자. 구곡은 문화산수(文化山水)이다. 구곡에서 신선과 선녀가 돼보자. 구곡시도 읽고 바위에 새긴 다양한 서체의 글씨도 보자. 그래서 문화지수(文化指數)를 높이자. 식견이 있는 선조들은 자연에서 인생과 학문의 진리를 확인했다. 놀면서 공부하고 즐기면서 예술을 하자.“얘들 보는 데는 찬물도 못 먹는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돼야 자손도 주인공이 된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는 말을 실천하자.

필자가 ‘율곡이 화양동 선유동 쌍곡을 찾지 않은 이유’라는 글을 20회 째 쓰는 이유가 있다. 다음 신문기사의 내용 때문이다.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우리 동네 숨겨진 이야기 2. 괴산의 구곡”에 “퇴계 이황이 송면일원의 비경에 취해 아홉 달가량 머물며 구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다”고 썼다. 2018년 11월 16일 신문에 “충북 괴산의 쌍곡구곡. 조선시대 퇴계 이황, 송강 정철 등 풍류를 아는 수많은 문인이 이곳에서 노닐었다고 전해진다. 선유구곡은…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인 퇴계 이황은 칠송정에 있는 함평이씨댁을 찾아갔다가…선유구곡의 경치에 반해 아홉 달을 돌아다니며 구곡의 이름을 지어 새겼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글자는 없어지고 아름다운 산천만이 남아 있다.” 1969년부터 59년동안 학자들까지 검증없이 진실로 알고 인용했다. 필자가 2001년 「괴산군 선유동의 전설적선취적 인물 이녕의 가계와 생애」라는 논문에서 사실무근이라고 규명했다. 먼저 관광철이면 반복인용되는 위의 내용에 대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했다. 둘째 대한민국은 2016년부터 4차산업혁명시대를 대비하여 창의융합교육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형적인 유학자들은 창의융합교육학문 즉 최초선구창의적 교육학문은 기본필수였다. 셋째 애향심을 발휘하고, 구곡은 율곡의 영향력이 선구적이며 거의 전국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먼저 쌍곡구곡의 희귀한 유적과 문인들의 자취를 제대로 보자. 첫째, 2002년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병암(屛巖:떡바위) 윗면에 파놓은 북두칠성 모양의 성혈(性穴)을 발견했다. 북두칠성을 숭배하는 부족이 제단(祭壇)으로 사용한 것이다. 넓은 두 바위 사이에 세워놓은 수직의 돌 앞면에 지금 농협의 상징 휘장(徽章)으로 사용하고 있는 복주머니(돈주머니)모양의 문양을 새겼다. 이렇듯 ‘고인돌과 문양이 있는 선돌’이 동일한 장소에 병립해있는 경우는 드물다. 칠성면 도정리에 거대한 고인돌이 7개 이상 남아있다. 둘째, 절말에 있던 이계사(離溪寺)는 쌍계사(雙溪寺) 무위사(無爲寺)라고도 불렸다. 셋째,정호(鄭澔)가 지금 소금강 근처 화수암(華叟巖)에 축요당(祝堯堂)을 짓고 은거했다. 그와 교유했던 신정하(申靖夏),연풍현감 조유수,괴산군수 심제현(沈齊賢)이 이곳을 여행하고 시문을 지었다. 넷째, 정호는 「쌍계축요정 화신정보정하운」이라는 시에서 「춘추(春秋)」를 읽으며 춘추대의를 지키며 은구(隱求)하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명했다. 당시 사대부들의 정신세계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1707년 조유수(趙裕壽)가 「쌍계화수암동사중왕방」라는 시에서 산을 보고 “미인(美人)을 이별하고 돌아오는 것 같네”, 이하곤은 「시중호」에서 “산수를 보는 것은 미인을 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이런 ‘산수평론(山水評論)’은 지식인 사이에 보편적으로 통용됐다.

다음 선유구곡을 보자. 첫째, 이녕(李寧)이 선유팔경을 설정했다. 이녕은 “구름머리떡(운두병雲頭餠)”을 만들어 손님들을 대접했다. 둘째, 선유팔경이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으로 분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은 바위에 명칭을 새겨놓아 널리 알려졌다. 가시적인 기록이 우세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이녕의 인품과 학문을 인정한 송인(宋寅) 이만헌(李萬憲)등이 그들의 문집에 기술해놓아 이녕과 선유팔경은 불멸하다. 셋째, 이준경(李浚慶)의 후손이 지은 한옥 고택을 송면초등학교 교실로 사용했다. 이를 배경으로 송면국민학교 제17회 졸업기념촬영을 했다. 넷째, 제4곡 연단로(煉丹爐)에 올라가 선취를 만끽하자. 제5곡 와룡폭(臥龍瀑) 경사암벽에 옥선회(玉仙會)명단을 새겨놓았다. 이들의 문집을 찾아내면 대박이다. 다섯째, 산주(汕主) 박양래도 선유구곡을 다녀갔다. 구곡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음풍농월하자. 돌아와 구곡문화관광기를 쓰자. 이렇게 문화피서를 마무리하면 문화명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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