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동양일보) 탁란(托卵)은 조류에서 볼 수 있는 기생의 한 형태로,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새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새가 뻐꾸기다. 뻐꾸기는 자기 새끼를 탁란하기 위해 남의 둥지에서 다른 새의 알을 먹어 없앤다. 그런 다음 그 둥지에 불과 10초 만에 뻐꾸기 알을 산란한다. 완전범죄다. 알의 수를 맞추기 위한 위장전술이기도 하다. 뱁새는 그것도 모르고 천적 새끼를 헌신적으로 양육한다. 심지어 비행 훈련까지 가르쳐준다. 또 뻐꾸기 새끼는 가장 먼저 부화한 뒤 눈도 안 보일 때 먼저 있던 뱁새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세인(世人)들은 뻐꾸기 어미는 새끼를 기를 줄도, 둥지를 만들 줄도 모른다고 한다. 할 줄 아는 게 ‘사기’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단 간단하게 말하자면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최고의 얌체 행위 중 하나이다. 당하는 새에겐 엄청난 손해지만, 탁란 하는 새에겐 어마어마하게 꿀을 빠는 얌체행위다. 그리고 어미 새는 탁란한 새가 다 자랄 때까지 자신의 새끼인 줄 알고 먹이를 가져다주는데 새끼 때부터 크기가 꽤 큰 편이라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도 어미새보다 몸집이 서너 배는 커다랗고 성장이 끝나면 어미 새의 도움을 따라 날갯짓까지 배워 마침내 날아간다. 탁란은 그저 남의 새끼 하나 더 기르는 부담을 넘어선다. 뱁새는 시간과 힘이 남아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게 아니다. 알을 낳은 뒤 비바람 가려 정성껏 품어 부화시킨 뒤 부리가 닳고 깃털이 다 망가지도록 헌신해 새끼를 길러 날려 보내는 것은, 생물로서 뱁새에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지상 최대의 과제이다. 그러니 제 새끼 대신 남의 새끼, 그것도 자신의 천적을 기르느라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건 이중의 헛수고가 된다. 뻐꾸기의 탁란은 고도의 생존전략일까? 아니면 무책임한 부모노릇 외면일까? 요즈음 우리나라 가족의 행태와 어쩜 닮은 점이 연상되기도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님의 피와 뼈를 물려받아서 우리는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인생이 좀 힘들다고 해서 ‘탁란의 인생’이라고들 한다. 우리 인생은 흡사 탁란과 같다. 남의 집에 알을 낳아 대신 품어 기르도록 하는 일처럼 우리가 태어나 세상에 던져져 세상과 부딪히면서 살아간다는 뜻에서 삶과 죽음을 탁란과 같다는 표현을 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인간 사회에서도 언제나 ‘뻐꾸기’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희생과 헌신으로 뻐꾸기 새끼를 길러내는 뱁새의 모습은, 어찌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복지제도와도 참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다양해진 것처럼, 우리들 삶 안에도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지낸다. 이 다양성 때문에 놀라거나 괴로워하기도 하나 우리가 사랑과 희생과 헌신의 정신을 발휘하기에 얌체 뻐꾸기 같은 이들조차 세상의 한 부분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 인간이 뭇가정에서 한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의 지극정성으로 캥거루족으로 길러져 성인되었으나 제 애비에미를 남보듯하니 뻐꾸기와 무엇이 다르랴. 또한 거기다가 자신의 자녀들을 늙어 가는 부모에게 탁란 시켜 놓고 자신들의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빨대족, 연어족이 또한 얌체뻐꾸기가 아닐까. 얼마 전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다는 국회의원들의 특수활동비 지출 내역을 보면 그들의 하는 짓이 딱 뻐꾸기를 닮았다. 국민의 세금을 자기 쌈짓돈으로 아는가 보다. 국민들은 어렵게 번 돈을 세금으로 꼬박꼬박 내고, 때 되면 표 달라고 조르는 뻐꾸기 같은 자들에게 열심히 표를 찍어 주는 뱁새가 아닐까. 또한 놀기만 하며 정부의 돈만 타먹고 살기위해 편법, 탈법이 판을 친단다. 그렇게 들어간 금쪽같은 세금이 16조413억원이란다. ‘이상렬’수필작가의 느티나무의 탁란의 한 구절이다. ‘나는 숨을 쉰다. 내가 지금 이렇게 큰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느티나무가 만들어 준 산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갈 곳 없는 새들을 불러 안식처를 만들고, 그늘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을 허락한 느티나무다. 느티나무는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사람들의 여린 호흡을 위해 자신의 몸을 탁란으로 내어준다.’고 썼다. 우리도 본인은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서로 탁란함으로써 보다 행복한 세상을 얼마든지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탁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거라면 절대로 얌체뻐꾸기같은 인생은 살지 말자. 그렇다고 뱁새같이 멍청한 헌신에 눈멀어 살지도 말자. 느티나무처럼 통 크고 넉넉한 가슴을 내어주는 그런 우러러볼 거룩한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기 가족, 이웃, 직장, 지역사회에서나마 함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행복을 나누며 사는 현명한 탁란의 인생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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