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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시가 흐르는 학교
유리창/ 시가 흐르는 학교
  • 동양일보
  • 승인 2019.08.05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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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이동진 제천 세명고 교사

(동양일보) 여기저기에서 무언가에 감탄한 듯한 짧은 탄성이 터진다. 간간히 남학생들 특유의 거친 비속어들도 섞여 있다. 저쪽에서 몇몇은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수군거리고 있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을 기세로 자기들끼리 만의 바리케이드를 굳건하게 쌓아 틈을 주지 않는다. 수업시간인데 말이다.

여기까지의 장면을 똑같이 동료 선생님께 소개했더니 수업시간에 애들한테 야동이라도 보여줬냐며 의아해 하신다. 야동이 아니라 시라고 말씀드리니, 절대 믿을 수 없다며 나에게 증거를 요구하신다. 사실 나도 믿을 수 없었다. 남학생들이 시라니….

올해 2학년 문학을 맡은 나는, 함께 하는 선생님들과 협의하여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대신 일주일에 두 시간씩 참여형 수업을 통한 수행평가를 담당하고 있다. 덕분에 평소에는 생각만하고 있던 다양한 모형의 수업들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편이다. 시 수업도 새롭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시집 한 권 읽기를 목표로 삼았는데, 내친김에 시집도 우리가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래서 평소에 내가 즐겨 읽던 시 서른 편 정도를 고른 뒤, 그림과 디자인에 재능과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한 편씩 맡겨 각자의 방식대로 꾸며보게 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 아예 전교생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 프로젝트 명은 ‘시가 흐르는 학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시집을 이번 주부터 아이들과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어떤 선생님의 시 수업 자료 중 ‘내 인생의 BEST5’라는 활동자료가 있어, 그것을 빌려다가 ‘10년 후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칠 시’, ‘20년 후의 나에게 바칠 시’, ‘30년 후 나의 아들, 딸들에게 바칠 시’, ‘40년 후 부모님 영전에 바칠 시’, ‘50년 후 나의 장례식장을 찾아 준분들에게 바칠 시’를 꼽아 보게 했다. 처음에는 50년 후에 자기는 멀쩡하게 살아있을 거라는 둥, 나는 절대 결혼을 안 할 거라는 둥 저항이 심했지만, 이내 시집에 집중하며 시 선택을 위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특히 앞에서 언급했던 평소 리액션이 좋은 남학생 반은 반응이 대단했다. 그 중 한 학생은 나희덕의 ‘못 위의 잠’에서 시작하여 안도현의 ‘스며드는 것’까지 처음으로 시를 통해 부모님을 떠올렸다며 새삼 시의 힘에 감탄하며 짝꿍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았고, 류근의 ‘첫사랑’이란 시를 읽고 감동해 중학교 때 운명 같았던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어떻게든 나에게 들려주려고 안달이 난 학생도 있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나오는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에요’라는 마리오의 명대사가 오롯이 우리의 교실에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 수업에서 갈래와 성격, 표현상의 특징. 그리고 그 많은 수사법들을 걷어 내니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2012년 영국에서 열렸던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The Poetry Parnassus)’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런던 올림픽을 기념해서 개최국인 영국이 올림픽 참가국의 대표 시인들을 초청하여 다양한 행사를 하였다는 기사였는데, 그 중에서 ‘rain of poems’라는 프로그램이 나를 사로잡았다. 런던의 템스강 상공에 떠오른 헬기가 영국 문화의 중심인 사우스뱅크 센터 주빌리 가든 위에 10만장의 시를 비처럼 뿌리는 광경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소름 돋게 했다. 시가 비처럼 내린다니……

우리의 ‘시가 흐르는 학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주면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시구를 직접 캘리그라피한 작품들이 학교 곳곳에 현수막으로 걸린다. 상상해 보라. 학교 곳곳에 강물처럼 시가 흐르고 있는 장면을. 그야말로 시로 가득한 학교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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