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남을 휘어잡아서 잘 부리는 솜씨’를 ‘휫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휫손이 있는 사람은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휫손을 부리는 데 있어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여기 두 사람 나름대로의 방법이 다르다. 하여 동네사람들은 어느 쪽의 것이 옳고 그른지를 놓고 왈가왈부다.

“거 참, 둘 다 하는 일마다 처리를 잘들 하니 누구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겄네.” “내가 그 말여. 이 사람 행동이 옳은 것두 같고, 또 저 사람 마음 씀씀이도 본받을 만하니 말여.” “그래서 세상일은 가지각색이고 그 색깔 따라 다 제 멋을 나타내는 모양여.” “자네 시방 그 말 워디서 들은 말여, 자네 머리에서 나온 말은 아닌 것 같아서 하는 소리여.” “아니, 시방 한 내 말을 알아듣는 자네야말루 보통머리가 아니구먼 그랴.” “이 사람들 시방 한 서방과 정 서방 얘기 하다가 워째 자네들 두 사람 얘기로 돌아서!”

한 서방이 시골서 양계장을 하는데 모두들 그 경영수단을 부러워한다. 원래는 논농사며 밭농사를 지었다. 그것도 남보다 잘 지어 괜찮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것 가지고는 시원찮던지 논밭 4천여 평을 합쳐 양계축사를 짓고는 병아리부터 시작하여 성계가 되도록 길러 파는데, 처음엔 동네서 극구 말리는 사람, 의아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니 웬걸 몇 년 전 오리파동이 있어 난리를 피웠는데도 그의 양계 업은 끄떡없는 것을 보고는 그의 일 처리를 칭송했다. 또 그의 자식교육도 남다르다. 지금으로 말하면 파쇼에 가깝다. 군대 갔다 온 다 큰 아들애를 다루는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명령하기 일쑤이고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면 생난리가 난다. 1주일에 한 번씩 외식을 하는데 그것도 애들의 의향을 물어보는 게 아니고 일방적으로 식당을 정하고 메뉴를 지정하곤 한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이에 누구 하나도 반기를 들거나 불평하는 애들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버지의 모든 일은 집안 잘 되라고 하는 것이고 자식들 잘 되라고 훈려시키시는 것을 우리 식구가 다 아는데 어찌 아버님 하시는 일이며 시키시는 일을 거역할 수 있습니까?” 하며 반문하는 것이다. 어쨌든 일처리의 능력이라든가 자식들 다루는 솜씨에 감탄할 뿐이다.

정서방은 대대로 내려오는 시골 농군이다. 지난날 부친이 밭날갈이(며칠 동안 걸려서 갈 만큼 큰 밭) 밭을 부쳐, 수확량의 절반을 소작료로 내는 이른바 배메기를 해서 7식구를 먹여 살리면서 근근이 마련한 논 엿 마지기와 밭 천 이백여 평을 물려받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농사꾼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살림이며 자식들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장 서방은 남의 집 수박하우스일이며 오이 따주기 과수원일 하기 등 날품을 팔며 집안일을 잘 꾸려간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잘 다스린다. 무슨 집안일이든 그의 내자는 물론 자식들과 의논해 일을 처리한다. 한번은 중3인 둘째아들의 잘못으로 윗방 자식들의 방에 불이 나 하마터면 안방까지 큰일 날 번했다. 그런데도 그는 그런 자식을 나무라지 않았다. 부모 된 입장에서, 그 개인의 실수로 인한 잘못에 대해 따끔하게 혼돌림을 줄만도 한데, “얘, 얘, 얼마나 놀랬느냐. 괜찮다 괜찮아, 방 다시 고치면 되고 타버린 책들은 새로 장만하면 된다.” 하고 오히려 그런 자식 기 죽을까봐 다독이고 용기를 내게 했던 것이다. 일을 저지른 본인은 물론 다른 형제들도 아버지의 이러한 마음 씀씀이를 알아서 아버지의 말씀이나 일에 한 번도 거역하는 일이 없다. 이러하니 그 사람 다루는 일이라든가 그 일처리의 솜씨에 사람들의 칭송이 크지 않을 수 없다.

“그 한 서방과 정 서방 말여, 집안두 그렇구 그 행실두 딴판인데 희한하게 다 집안일이며 자식들 교육도 잘 돌아가고 있단 말여.” “글쎄 말씨, 그러니 어느 식이 옳고 어느 식이 그르다고 할 수가 없단 말여. 둣집이 잘 돌아가고 있잖은가.”

휫손의 두 사람 방식을 놓고 과연 어느 쪽의 것이 옳은가 하고 갈팡질팡할 것이 아니라는 걸, 그저 상대방에게 진심의 내 속을 그대로 표출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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