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지금으로부터 168년 전인 1851년 컬럼비아 대학 약대 출신의 존 키엘(John Kiehl)은 미국 뉴욕 맨해튼 3번 대로에서 동종요법을 다루는 약국을 열면서 키엘이라고 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화장품 회사를 만들었다. 키엘은 여성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브랜드로서 주로 프리미엄 피부, 모발, 신체 관리 제품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존 키엘은 제품의 우수성뿐 아니라 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 이른바 마케팅에 있어서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방식을 취해 왔다. 지금은 보편화 되어 있는 ‘사용해 보고 구매하세요(Try before you buy)’라는 샘플링 서비스를 1920년대에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마케팅에서 키엘이 두드러지는 성과를 나타낸 시기는 로레알 그룹이 키엘을 인수한 2000년대 이후인데 그 키워드는 바로 진정성(authenticity)이었다.



로레알의 키엘 마케팅 전략은 브랜드의 진정성을 소비자에게 과장되지 않게 전달하는 것으로서 키엘이 1851년 뉴욕에서 시작한 약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역사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화려하게 치장된 타사의 화장품 용기와는 다른 수수한 용기를 사용하면서 제품의 과장된 성능보다는 자연주의 제품을 입증할 수 있는 재료와 성능을 상세하게 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진정성 마케팅은 로레알이 키엘을 인수한 지 10년 만에 5배 이상의 매출액 신장으로 나타났다.



진정성 마케팅이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제임스 H. 길모어와 조지프 파인 2세의 저서 ‘진정성의 힘(Authenticity, What Consumers Really Want)’를 통해서였다. 이들은 진정성 마케팅을 구성하는 영역을 자연성, 독창성, 특별함, 연관성, 영향력으로 나누었다. 키엘은 이들 중 자연적 진정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지난 10년간 혁신의 대명사로 알려진 아이폰(iPhone)과 아이패드(iPad)는 독창적 진정성에 근거한 것이다. 애플은 획기적인 기술, 완전히 차별화된 제품의 기능, 혁신적인 디자인, 놀라운 스토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진정성이란 반드시 획기적인 혁신성이나 완전한 독창성만을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제품이나 콘텐츠가 가진 독창성을 부활시키는 것도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있는데 최근 일각에서 불고 있는 복고(retro) 열풍이 그 예이다.



대학에 대한 위기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2년 이후 13개의 지방대학이 폐교되었다. 지난 10월에는 교육부가 부실 사립대의 자발적인 폐교를 유도를 지원하기 위해 재학생 충원율 60% 이하인 대학에 대해서는 폐교 절차를 지원하는 방책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수년 내로 80여 개의 대학이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최근 들어 상당수의 대학이 대학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위기의식의 방증이라 하겠다.



오래전 일본이나 미국에 출장을 다니다 보면 심심치 않게 대학 광고를 볼 수 있었다. 고속도로 주변이나 시내버스, 전철에 설치된 대학 광고를 볼 때마다 교육기관인 대학이 무슨 광고씩이나 하는가 싶었는데 이제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인구의 급격한 노령화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를 우리보다 먼저 겪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국립대 법인화까지 시도했다는 점에서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설치된 대학 광고를 볼 때마다 단지 그 광고를 봤다고 해서 수험생들이 해당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할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굳이 대학 광고가 아니더라도 대학 알리미를 통한 대학 운영 전반에 관한 상세한 정보뿐 아니라 대학의 각종 내밀한 현황까지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매체를 통해 수험생에게 제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 광고의 자극적인 문구만으로는 수험생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다. 키엘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대학 역시 잘 가르쳐야 한다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면 학생들의 높은 취업률과 학문적 수월성 확보와 같은 교육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진정성 있게 잘 가르치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야말로 대학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홍보가 아닐까 싶다. 미국 슈퍼마켓 체인인 세이프웨이(Safeway)의 ‘먼저 실행하고, 그 다음 약속하라(Deliver, then Promise!)’는 마케팅 구호를 우리 대학도 실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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