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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중재자 외교의 비극
동양칼럼/ 중재자 외교의 비극
  • 동양일보
  • 승인 2020.01.19 2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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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대 국회의원
김종대 국회의원

[동양일보]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열흘 앞 둔 2017년 6월. 필자는 워싱턴의 우두르 윌슨 센터에서 쓰디쓴 경험을 겪어야만 했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신임 정부의 정책기조를 소개한 필자의 연설에 대해 다니엘 그로스, 마이클 그린 등 손꼽히는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이 일제히 공격하고 나섰다. 공격이 집중된 곳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과 중국 간에 갈등을 해소하는 중재자 역할을 문재인 정부가 자임하고 나섰다는 대목에서였다. 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강대국의 충돌하면서 한국이 그 희생자가 되는 것을 차단하고 평화 교량국가로서 지역 질서를 주도하겠다고 선언해 온 터였다. 이에 미국 측 인사들은 “이미 미국은 중국과 다양한 대화를 하고 있는데 한국 정부가 뭘 중재하겠다는 거냐”며 냉소와 비난을 퍼부었다. 작은 나라 한국이 주제를 모른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러다가 미안했던지 한 패널은 “굳이 한국이 중재를 하겠다면 고맙게 받아들이겠다”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필자는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2018년 1월이 되자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가 훈풍을 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문재인 정부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 중재자(agent)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처음에는 북한도 큰 관심을 갖는 것 같았다. 이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세 번의 남북 정상회담까지 모든 게 잘 풀리기만 했다. 9·19 평양 남북 정상선언이 있고 나서 두 달 후인 11월에 필자는 북한에 가서 아·태평화위원회 주요 일꾼들과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감지되었다. 북 측 인사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무언가 스스로 해보려고 하지 않고 자꾸 미국과 중재하겠다면서 책임을 회피한다고 주장했다. 그 중 한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은 원래 결단력이 없는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데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분명 우리 정부의 중재자 프레임에 처음부터 불만을 갖고 있었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 “미국 메시지 받았다고 호들갑떠는 작태” 등 최근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쏟아 붓는 비난의 80%는 바로 이 중재자 역할을 공격하는데 모아져 있다.



필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여러 번 중재자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촉구했음에도 이상하게도 이 정부는 그 말을 거둬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웃음을 산다. 문 대통령의 미덕은 항상 상대방에게 공을 양보하고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조력자를 자처하는 겸손함에 있었고, 그것이 외교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착한 외교로 이어졌다. 지난 해 11월에 경제 도발을 한 일본에 대해서도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지속하기로 약속하면서 친절과 포용의 메시지를 던졌지만 아베 총리는 냉담했다. 지금 주변 정세는 문재인 정부의 착한 외교를 나약함으로 인식하고 착해빠진 대한민국을 마음껏 이용해 왔다. 스스로 난관을 돌파하며 운명을 개척하는 당당한 자세를 보이지 못하면서 중재자라는 착한 외교로 스스로를 포장해도 돌아오는 것은 비난뿐이다. 이제야 한계를 깨달았는지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우리가 남북관계로 한반도 정세를 돌파하겠다”는 당사자 선언을 했지만 이미 실기한 것 아닌지 우려된다. 최근 해리 해리슨 주한미국대사가 문 대통령 신년사에 시비를 거는 모습도 가만히 그 내막을 살펴보면 “한국이 왜 주제넘게 나서냐”는 뜻으로 읽혀진다.



국제정치에서 중재자란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일시적인 전술에 불과한 것이지, 이걸 하나의 국가 정책으로 삼는다는 건 어리석고 비루한 일이다. 그게 이 정부 외교의 실패 이유다. 섣부른 중재 역할보다 국가의 자존을 세우는 이스라엘과 싱가포르가 존중받는 이유를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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