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한정호 충북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동양일보]중세나 고대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명의가 종종 등장한다. 다른 의사들은 아무도 진단하지 못하는 병을 진단하고,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치료를 해 죽어가던 사람도 벌떡 일으켜 세운다.

어렸을 적에 이런 영화를 보면서 명의를 꿈꾸며 의사가 되는 길을 걸어왔다. 그런데 요즘 시대에는 의사란 직업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앞으로 명의는 인공지능이 될 것이란 말도 종종 들린다.

실제로 미국 등의 선진국에서 시작돼 국내의 몇몇 병원도 항암치료의 종류와 용량을 추천하는 것을 인공지능 컴퓨터인 ‘닥터 왓슨’을 도입했다며 광고도 하고 있다.

첫째, 현대의학에서 명의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과거에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고, 통계 등의 검증방법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의사의 진단방법이나 치료방법은 과학에 기반 하지 않았다. 각자의 종교나 철학에 기반해 서양에서는 신에게 기도를 하거나 악마를 몰아내는 치료가 1000년 이상 지배해왔고, 동양에서는 도교의 기와 음양오행설에 기반한 중의학이 대부분을 차지해왔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전세계가 점점 하나로 통일돼 갔다. 위암의 항암치료도 20년 전까지는 병원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이제는 전세계적 공동연구와 검증을 통해 1차적으로 사용해야할 항암제, 2차 항암제 그리고 용량까지 모든 의사들은 동일하게 처방한다. 과학적 검증을 거쳐 최선의 선택이 매년 업데이트 되고, 이것은 인터넷에 모두 공개돼있다. 지금이라도 인터넷 검색창으로 미국보건국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각 암의 종류별, 병기별 항암제와 용량까지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즉 이 최고의 치료법이 표준치료법으로 이를 어기는 의사가 돌팔이인 것이며, 이 표준치료를 지키는 모든 의사는 명의인 것이다. 그러니 굳이 명의라고 있다고 할 수가 없다는 역설이다.

둘째, 인공지능이 현재 활용되는 영역이 항암치료의 약의 종류와 용량을 선택해주는 것이 첫 번째 설명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렇게 명확하게 정해진 것을 선택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돌팔이가 아니면 항암제 선택을 엉뚱하게 할 리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병원들이 ‘닥터 왓슨’을 도입하지 않는 것이다.

종합하면, 항암치료는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모두 통일된 치료를 하고 있다. 한국 내에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청주의 어느 병원이나 의사가 진료해도 동일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 항암치료만 그럴까? CT, MRI, 방사선 치료기는 대학병원이라면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그럼 수술이나 시술은 어떠할까? 전세계에서 특정 수술로 유명한 의사가 분명히 있다.

그 의사가 수술을 잘해서 유명할까? 정말 명의일까? 장담하건데 그렇지 않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명의는 그 수술에 대한 논문을 많이 써서 그 논문이 유명해지고, 그것이 다시 언론을 통해서 알려졌기 때문에 이름 있는 의사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외국은 조금 다르기는 하다. 한국은 이렇게 논문으로 유명해진 교수가 명의 소리를 듣는데 비해 일본이나 미국에서 명의라고 하는 의대교수들은 논문보다 정말 수술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의대교수는 진료와 교육, 연구를 모두 해야 하는 반면에 외국에서는 교수도 분화돼 진료만 전념하거나, 교육이나 연구에만 전념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의학교육은 최고가 아니라 최소한 이만큼을 넘어서는 실력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따라서 병원 또한 그러하다.

정부에서 지방분권이네 살기 좋은 지방·지역을 외치지만 실제로 사는 지방이 가재, 붕어, 개구리가 살기 좋으려면 좋은 병원은 필수이다. 이런 병원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려면 물론 병원이 좋아야하겠지만, 객관적인 정보에 기반해 병원이 선택돼야 지역의 병원도 규모의 경제를 이뤄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충북 사람이 모두 경기도의 쇼핑몰과 인터넷 쇼핑만 하면서 지역경제 살리기를 외쳐야 소용이 없듯이 충북의 병의원을 이용해 의료기관이 성장하고, 의료기관의 직원 고용이 늘어나서 지역경제의 선순환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지역은 가재도 살기 어려운 곳, 의료조차 소외되는 어두운 개천이 돼 갈 것이다. 가장 객관적으로 의료기관의 편차가 존재하는 않는 암 진단과 치료, 항암치료부터 정부와 지자체가 국민들에게 설명해주길 부탁한다. 치료받는 환자와 가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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