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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훔치개질
풍향계/ 훔치개질
  • 동양일보
  • 승인 2020.02.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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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훔치개질’엔 두 뜻이 있다. 그 하나는, ‘남의 물건을 몰래 후무리어 가지는 것’이다. ‘후무리다’라는 건, 남의 물건을 슬그머니 휘몰아서 제 것으로 가지는 걸 말하니, 곧 남의 물건을 남이 모르게 몽땅 제 것으로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알아 쉽게 말하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짓이다. 즉 도둑질이다. “별 이상한 놈도 다 봤지. 많이 가지고 있는 애 걸 훔치개질 했으믄 그걸 제 것으로 하지 않고 그것 없는 아이에게 남모르게 준다며.” “글씨 말씨, 그놈이 그렇다는구먼.” “그놈 영락없는 의적일세나 그려.” “의적?” “의적(義賊) 몰러. 부정으로 치부한 사람의 재물을 훔치개질 해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의협심 많은 도둑 말여.” “이 사람이 시방 무슨 말 하는 겨. 애한테 의적은 뭐고 도둑은 뭐여?” “이 사람 시방 좋은 뜻으루 한 말여.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는 남의 것을 훔치개질했지만 그걸 제가 갖지 않고 그것 없는 애에게 주었으니 얼마나 대견하냐 이 말여.” “난 도둑이니 뭐니 해서 말여.” “자네 맘도 알어. 이해 햐!”

또래끼리 놀고 있으면서 서로 있느니 없느니 쌈질을 하는데 결국은 없는 애가 식식대며 돌아서는 것을 보고는, 이제 겨우 여남은 살 먹은 같은 또래애가 이튿날 그 풍족히 가지고 있는 애의 것을 훔치개질 해다가는 없어서 식식대며 돌아선 애에게 남이 모르게 주곤 한다는 것이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그 혜택을 입은 아이들이 제 어른들에게 말해 온 동네에 알려지게 됐다. 그 애는 집안이 그리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어려서부터 남의 것을 몰래 훔치개질하는 습성이 있고 그걸 이렇게 좋은 데 썼다. 이 애가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읍네 농기구수리 점에서 한 3년 일하다가 군대 갔다 와 장가를 들고 집에서 아버질 도와 농사일을 한다. 하지만 그 훔치개질 습성은 그대로였다. 남의 집 농기구가 고장이거나 못쓰게 됐으면 그걸 주인 몰래 슬쩍슬쩍 해서 몰래몰래 갔다가 놓곤 하는 것이다. 그러는 걸 알게 된 동네선 그를 동네보배로 여긴다. “거 참, 우리 밭일하느라 집 비운 사이 어느 틈에 와서 고장 난 경운기 가지고가서 고쳐서는 갖다놨구먼. 그 사람 고친값두 안 받어. 새로 들어간 부속이 안 들어갔다고 하면서 말여.” “일전엔 동장이네 모종기계를 주인 없는 사이에 몰래 가지고가서 말끔히 고쳐서 갖다놨다고 하더니만 거기도 그랬는가뵈.” “그뿐 아녀 선풍기 전기밥솥 이런 것들도 혼자 된 할머니들 집 것을 몰래 가져다 고쳐선 제 자리에 갖다 놓는다는겨.” “여하튼 그 사람 어려서부터 훔치개질로 몰래 몰래 남을 돕더니 커서두 마찬가지여. 우리 동네 보배여 보배.”

그런데 훔치개질에는 두 뜻이 있다 했거니와 또 하나는, ‘물건에 물기나 때가 묻은 것을 닦아 지우는 일’이다. 바로 그의 아내가 또한 이 훔치개질을 잘한다고 동네소문이 자자하다. 그 아내는 집안의 물건을 말끔하게 훔치개질하는데, 동네아낙들의 말이 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휘뚜루마뚜루 닥치는 대로 깨끗하게 훔친다는 것이다. 살강의 그릇이나 수저를 부뚜막을 행주로 훔치개질 하고, 방마다 손걸레로 마루마다 대걸레로 훔치개질 하고, 봉당을 수수 빗자루로 마당과 뒤꼍을 대빗자루로 쓰는 것이다. 논이나 밭을 맨 뒤에 얼마 있다가 풀을 뜯어내는 것도 훔친다고 하는데, 이런 일까지 한다. 그러니 말 그대로 바깥일은 신랑이 하고 집안일은 아낙이 하는데 덧붙여 아낙은 이렇게 신랑의 일까지 훔치개질 한다. 그러면서 신랑 일까지 해주느냐? 하면, 바깥양반의 일이 잘 되어야 안사람일도 잘 이루어지는 거라고 말한다. 이런 아낙을 두고 동네 부녀자들이 한 마디씩 한다. “저렇게 신랑이라면 입으로 겹쳐 물고 흥 빨고 감빨라대니 신랑의 얼굴이 뿌옇지.” “신랑이 일하는 농기구실이 떨어져 있잖여. 거기까지 가서 쓸고 닦고 훔치개질을 한다잖여.” “나같으믄 귀찮어서래두 그렇게는 못햐!” “하여튼 둘이 잘 만났어 신랑은 훔치개질해서 남을 돕고 아낙은 집안은 물론 신랑 일까지 훔치개질해서 깨끗이 하니 말여.” 이러 하니 요새 세상에 본받을만한 일이다. 더구나 이 아낙처럼 늘 주위를 깨끗이 훔치개질 하면 그 무섭다는 신종 코로나도 얼씬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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