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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2) 화랑의 무대 제천 점말동굴
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2) 화랑의 무대 제천 점말동굴
  • 동양일보
  • 승인 2020.02.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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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원장

[동양일보]점말동굴 입구의 암반겉면에 새겨진 글씨(刻字)들은 1979년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점말동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제천 점말동굴 탁본배치도
제천 점말동굴 탁본배치도

그 후 30년이 지난 2009년 제천시와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화랑의 場 점말동굴”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점말동굴이 한국의 대표적인 선사유적인 동시에 역사시대에는 화랑들의 유오지(순례지)가 되었던 장소임을 밝힌 바 있다. 이후 점말동굴의 학술적 중요성이 감안되어 2011년 동굴주변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뜻밖에 동굴 앞에서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석조불상을 비롯한 불교유물과 건축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결론적으로 점말동굴은 선사유적이면서 신라화랑들이 이곳에 왔던 행적을 암벽에 새겨놓은 생활유적이자 신앙유적이라는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 유적지라고 하겠다. 이렇게 습합된 유적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매우 특별한 동굴유적임이 분명하다. 이곳이 선사인들의 주거지였고 역사시대에 와서 신라의 청소년들이 무리지어 찾아왔던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던 사연이 무엇일까?

김유신태실
김유신태실

충북지역에는 신라화랑과 관련된 유적이거나, 그들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별한 유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신라통일의 주역으로 사후에 흥무대왕으로 추존된 김유신은 그의 아버지 김서현이 진천 태수로 있을 때 현재의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탄생한다. 지금도 상계리의 태령산 정상부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인 김유신의 태실(사적 제 414호)이 유존되고 있다. 또한 김유신의 조부인 김무력은 6세기 중엽 진흥왕 때 한강의 상류지역인 단양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이사부등과 함께 공훈을 세웠던 사실은 단양군 하방리의 성재산에 위치한 단양 신라적성비(국보 제 198호)에 기록되어 있다.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진천 사곡리 마애여래입상

진천군 이월면 사곡리의 사자산 중턱에 7.5m 규모의 거대한 마애불상(충북도 유형문화재 제 124호)이 조성되었고 그 옆에는 장수굴이라는 천연동굴이 있는데 1977년 동굴 안의 바닥면에서 건물주초시설이 발견되면서 이 유적은 동굴 앞에 목조전실을 갖추었던 석굴사원임을 확인하였다. 구전이기는 하나 이 지역에 장수굴, 화랑뜰과 같은 지명이 유래되고 있음을 볼 때 장수굴은 화랑과 관련된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증평 남하리 마애불상 중  반가사유상
증평 남하리 마애불상 중 반가사유상

 

한편 진천에서 가까운 증평군의 남하리 절터에는 5구의 마애불상(충북도유형문화재 제197호)이 있는데 이 불상은 삼국기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불. 보살상으로, 신라불교가 충북지역으로 진출과정을 알게 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최근에 학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는 불교유적 이다. 이 불상들은 자연암반에 인공을 가하여 전.후.측면을 만들고 거대한 석재로 윗부분을 덮어 지붕으로 가구하여 불당으로 사용된 내부공간을 만들었다. 암석의 정면에 삼존불. 측면에 독존불 등을 조각하여 석굴사원 외측 면에 장엄을 갖추고 있는데 그중에서 북측면의 암반에 조각된 불상은 한쪽 발은 내리고, 내린 무릎 위로 다른 다리를 올리고 한쪽 손가락을 펴서 얼굴에 살짝 대고 있는 형상의 반가사유상이다. 충북지역에서 마애반가사유상을 조형한 예는 충주시 앙성면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제1401호)과 이곳 증평군 남하리 마애불상이 유이하다고 하겠는데 이와 같은 미륵보살상의 조형은, 아직까지 도래하지 않은 미래불이며 미래불의 화신이 “화랑”이라는데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유적이 천연암반을 이용한 석굴사원의 형태를 띠고 있어 이 유적의 배경 또한 화랑의 수도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삼국사기 김유신 조에 의하면 그는 15세에 화랑이 되었고 17세에 경주 남산의 중악석굴(현재의 신선사)과 열박산동굴. 현고잠의 용혈에 들어가 고행하고 수신하면서 통일의 의지를 키웠는데 고행 처인 동굴에 불당인 암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주 중악석굴과 진천의 장수굴, 증평 남하리사지의 석실 그리고 제천의 점말동굴은 동굴과 불교유적 혼재해 있다는 또렷한 공통점이 보인다.

현재 점말동굴의 전면 외벽에서 단편적으로 확인되는 화랑들의 서각이 확인되는 것은 약 80여자 정도이다.

동굴 전면 암벽의 상단과 좌.우면의 12개 지점에서 부정형의 종서로 大長行. 守其身行. 烏郞徒. 祥蘭宗得行. 弓草行. 癸亥年五月. 癸亥年 十一月. 平道 金蘭行. 道王長行. 孝弼行등이 확인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박물관의 조사 시에 암반에서 떨어진 채로 수습된 4점의 석편에는 禮府忠. 庚宣行. 西郞徒陽月. 崙郞製 등 모두 17자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이쯤해서 서각 장소인 동굴의 전제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이미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한 고행 처로서의 동굴존재가 확인된 바 있다. 이러한 동굴관련 신화는 우리나라 뿐 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도 석굴에는 곧 신령이 있다고 해서 생산과 풍요의 기원처가 되었던 일은 많았다. 특히 고구려의 수도였던 즙안시 인근에 위치한 “국동대혈”은 고구려의 가장 중요한 국가적인 제의처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신라시대에도 동굴가운데는 명백히 기도처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동굴과 화랑이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원도 통천군에 위치한 금란굴은 화랑의 순례지로써 2회나 기록을 보일정도이다. 비록 우리의 옛 기록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고대의 聖地였던 제천점말동굴에 신라화랑들이 남긴 刻書를 통해 점말동굴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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