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기업 용역비용 5차례 깎고·미루면서 일거리는 추가

청년기업 '㈜삶이은'에 대한 갑질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청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동양일보 조석준 기자]“젊은 패기로 열심히 일하다보면 정말 잘 풀릴 줄 알았습니다. 그동안 정부나 학교에서도 청년창업을 적극 장려해왔기에 다니던 대학도 중퇴하고 회사를 설립했지만 결국 노동력만 착취당하고 남은 건 빚과 사회에 대한 불신뿐입니다. 주변의 많은 청년들이 왜 공무원시험에 그토록 목매고 있는지 비로소 실감합니다. 청년이라고 더 이상 아프기도 싫고, 이젠 도전보단 안정을 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해 2월 청주에 도시재생 기획·연구개발 회사인 ㈜삶이음을 설립한 장정민(27) 대표가 그동안 사업지원기관으로부터 ‘갑질’ 당한 이야기를 꺼내다 감정에 북받쳐 울먹이면서 내뱉은 말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1월 청주 성안길상인회로부터 초록상점가로만들기 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성안길 내 건물·점포현황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상점가 D-base 구축사업을 의뢰받았고, 충북대 산학협력단이 청주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 중인 청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이하 ‘센터’)와 함께 사업을 진행해 왔다.

당초 장 대표는 작년 12월 중순께 계약서를 작성하고 현장조사에 필요한 선수금을 받은 뒤 일을 시작하려 했지만 “예산집행 편의상 먼저 일을 처리해 주면 1월 초에 계약과 선수금을 지급하겠다”는 센터 관계자들의 요구에 따라 착수계획서 등을 제출하고 바로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창업한지 갓 1년 된 청년기업 대표의 입장에선 당장 돈을 버는 일보단 실비만 보장되면 기관의 프로젝트를 맡아 성과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기에 망설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자신을 포함해 5명의 현장조사 팀을 꾸린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20일부터 지난 1월 28일까지 30일간 한겨울 추위와 싸우며 성안길 일대 330개 상가의 1311개 점포를 10개 구역으로 나눠 방문조사를 했다. 이들이 조사한 내용은 해당 상가에 있는 점포의 주소와 연면적, 건면적, 토지면적, 건설연도, 건물·토지주 명의, 점포명, 층수, 층별 공실·엘리베이터·주차장 여부 등 총 11개 항목을 모두 330시간에 걸쳐 조사·기록했다. 이후 분석(300시간)과 확인(20시간) 작업을 거쳐 최종 마무리가 될 만큼 많은 공정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조사비용을 지급해야할 센터에선 대금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자금난을 겪어야만 했다.

장 대표는 “센터에선 제가 처음부터 요구했던 선수금(200만원)은커녕 착수계획서를 계속 변경하면서 용역비용을 5차례에 걸쳐 삭감했다”며 “센터장의 해외출장이나 카드발급이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계약과 대금지급을 차일피일 미뤘고 결국 오는 4월에나 예산집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통보받았다”고 설명했다. 또 “처음에 성안길상인회가 제시한 금액에 따라 부가세를 포함한 5명의 인건비 550만원과 현장조사 비용(식대, 유류대, 사무비용) 80만원 등 모두 630만원의 경비를 청구했는데 센터가 예산문제를 이유로 570만원→525만원→505만2000원→500만원→300만원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330만원을 삭감했다. 이어 자료집출간·디자인·SNS홍보(100만원)와 설명회대관·물품비·용품렌트비(100만원)를 포함해 모두 500만원에 맞춰줄 것을 요구하는 등 센터가 사업비를 절반 넘게 낮춘 것도 모자라 오히려 일을 더 얹어버렸다”고 하소연 했다.

규모와 공정, 발주처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2018년 수원시에서 실시한 426가구의 빈집실태조사의 경우 시가 데이터와 가이드라인을 제시, 용역업체에 조사·분석을 의뢰하는데 모두 1510만원의 비용이 책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대표는 본인의 인건비는 포기하더라도 함께 방문조사를 했던 팀원들의 밀린 인건비를 지급해야 했지만 센터에선 비용 지급이 계속 지연됐다. 결국 그는 부모님과 친구에게 300만원을 빌려 인건비 일부를 해결했지만 나머지 채무는 여전히 쌓여 있는 상태다. 사실 누군가에겐 대수롭지 않은 금액일 수도 있겠지만 젊은 패기 하나로 회사를 일군 20대 청년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장 대표는 “결제가 미뤄지면서 인건비 마련을 위해 채무까지 지게 됐지만 센터에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돈을 지급하지 않겠다’, ‘다른 업체나 알바(학생)에게 맡겨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왔다”며 “비록 속은 상했지만 그동안 추위와 싸우며 힘들게 만든 성안길 상가현황 자료가 잘 쓰여 질수 있도록 상인회를 통해 센터에 넘기려고 했지만 우리가 나중에 문제 삼을 것을 우려해 거절, 또다시 좌절해야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센터 직원들은 사회경험이 적고,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청년기업인들을 마치 돈만 조금 쥐어주면 마음대로 부려먹거나 끼워 맞출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만약 이 일을 더 이상 못하게 되더라도 다른 청년 기업들에게 이러한 피해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적극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센터 관계자는 “㈜삶이음은 성안길상인회에서 D-base 구축사업 용역을 맡기기 위해 추천한 업체로 지역 상권에 대해 잘 아는 청년기업을 발굴·육성하겠다는 생각에 일을 맡겼지만 제대로 된 제안서조차 제출하지 않아 지금까지 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숙한 업무처리로 인해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예산삭감 문제는 전혀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7명 정도의 알바들에게 일을 맡겼다면 300만원의 예산으로 1~2주 안에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고 상인회에서 상당 부분의 자료도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특히 “해당 사업의 자문을 맡은 교수의 사업계획서에는 처음부터 조사비용(350만원)과 인쇄비·조사결과발표회(150만원)를 포함해 모두 500만원에 책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인쇄비와 조사결과발표회 금액도 과하게 책정된 것”이라며 “업체 측에 이달 말까지 비용을 지급할 테니 사업을 마무리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연락을 피하고 잠적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청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는 도시재생의 성공적 실현과 확산, 주민참여·특화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2015년 개소, 주민·행정 등 참여주체 사이의 업무를 상호연결·조정하고 민관-행정-전문가 거버넌스 구축 등 도시재생사업을 총괄 하고 있는 청주시 산하기구이다. 글·사진 조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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