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창동양포럼 주간

[동양일보]8월 18일 일요일

어떤 독자가 8월 17일에 올렸던 글 속에 나오는 ‘활명연대(活命連帶)’라는 말의 뜻이 대강 짐작은 되지만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세 종류의 국어사전을 뒤져 보았으나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아서 직접 물어보기 위해 내게 전화를 했다.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가 생각해 온 바를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활명(活命)’이라는 말은 나 자신의 개인적인 조어(造語)이기 때문에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철학대화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아니고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낯선 어휘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철학운동에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말이 필요하고 그래서 기왕에 있는 말을 새롭게 뜻풀이 하던가 아니면 아예 새로운 말을 말들 수밖에 없다.

활명이라는 말의 뜻은 기왕에 태어난 목숨 = 생명은 어떤 조건, 상태, 현상이 건간에 태어났다는 사실자체를 축복하고 감사하고 존중하고 온전하게 다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던 편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 사상, 견해 등에 전면으로 대치되는 관점, 입장, 주장이다. 개인에 대해서도 그렇고 국가에 대해서도 그렇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만 극단화, 절대화, 독선화 되지 않도록 신중한 균형감각을 상실하지 않도록 늘 스스로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은 노년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어린아이의 출산율이 감소하는 저출산, 저성장, 초고령사회화라는 전대미문의 대변혁을 겪으면서 새로운 생명관‧ 생사관‧ 인간관의 재조명‧ 재조정‧ 재정립이 시급한 상황에 처해있다. 이와 같은 시대의 요청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30년 전부터 앞서서 다양한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대책을 간구했던 경험과 대책과 성패가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일철학대화의 효용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한일간 시민주도의 활명연대를 통해서 슬기롭고 구체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공동대응이 절실하게 필요하고 더 없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활명”이란 중명(重命=주어진 목숨을 중히 여기다)이고, 존명(尊命=주어진 목숨을 존중한다)이고, 귀명(貴命=주어진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이고, 전명(全命=주어진 목숨을 끝까지 다한다)이다. 이것은 생명철학적 지상명령인 동시에 노년철학적 대전제이며, 3세대의—청소년세대, 중장년세대, 노숙년세대— 상화‧ 상생‧ 공복 실현을 위한 공통최우선과제이다.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사한다.



8월 19일 월요일

오늘에서야 옆구리 아픔이 실감될 만큼 경감되었다. 나이듦에 따르는 자연스런 증후이며 또 다른 형태의 아픔이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 올 것이다. 기피하거나 제거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될 수 있는 데까지 친숙해지고 아픔을 통해서 무통 평안할 때 소홀히 여겼던 일들을 다시금 꼼꼼하게 되새겨 보는 기회로 선용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난 일주일 동안, 특히 아픔이 심해져서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밤중에, 그리고 새벽녘에 몇 번이고 머리에 떠오르고 가슴에서 체감되고 뼈를 통해 팔다리로 내려가는 진지한 자문자답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부터 얼마나 더 나이 들어갈지 알 수는 없으나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할까? 나는 과연 어떤 나이듦을 바라는가? 아름답게 그리고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것? 아니면 슬기롭고 점잖게 나이 들어가는 것? 그것도 아니면 건강하고 풍요로운 나이듦?

내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몸이 몹시 아픈데도 마음은 나이듦의 갖가지 모습을 계속 그려간다.

나이 들어도 낡지 않고 시들지 않고 바라지 않는 삶.

나이 들어도 싱싱하고 펄펄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삶.

나이 들수록 더 멋스럽고 더 점잖고 더 깔끔한 삶.

죽는 순간까지 설렘을 잃지 않는 나이듦.



8월 20일 화요일

HY야, 80대 중반까지 살아온 내가 심정적으로 가장 깊은 공감을 느끼는 시 한수를 고른다면 누가 쓴 어느 시라고 말하겠느냐고 물었었지?

그때는 내 옆에 앉아있던 기성시인이 어떻게 느낄까가 마음에 걸려서 즉답을 못했었지. 그리고 이런 일 저런 일이 있어서 잊고 있었는데 오늘 새벽에 아직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진솔한 물음에 진솔하게 대답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져서 자백할까.

85세의 내게 가장 진한 감동을 주고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시는 놀랍게도 27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의 “서시(序詩)”인데 노경(老境)의 심심(深心)을 그만큼 나이 들어보지도 못한 젊은 마음이 어떻게 그렇게도 영롱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 이것은 그의 한없이 맑고 깨끗한 시심(詩心)‧ 시혼(詩魂)‧ 시영(詩靈)이 어우러져서 출산한 생명의 절규였을 거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 中>



젊은 한때 나는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를 “별을 헤이는 마음”으로 고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를 바꾸어서 “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해야지”로 고쳐서 그것을 내 삶의 지표를 세웠었지.

중장년기에는 주로 일본에서 일본인 벗들과 공공철학대화운동에 몰입열중하고 있었을 때 어쩌다 마음이 허전한 밤이면 정말 뜻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맥주라도 마시면서 되는 이야기, 안 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본 땅에서 한국인인 내가 철학대화운동을 해가는 데서 예상 밖의 온갖 왜곡, 오해, 중상, 모략, 폄하에 부딪히고 상처를 입을 때마다 “잎새에 이는 바람(소리)에도 정말 견딜 수 없는 아픔으로) 나는 괴로워했다”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의 심상풍경(心像風景)이었어.

그러나 이제 나도 명실이 함께 노숙년기에 접어들었어. 내게 주어진 수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나도 이윽고 그들과 하나가 될 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남은 나에게 주어진 길을—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표표하게— 걸어가야겠다.”는 윤동주 시인과 나 자신의 상호영통(相互靈通)을 이루게 해주는 시이기 때문에 “서시”는 내게 더없이 귀한 거야.



8월 21일 수요일

오전 10시 이스터항공 ZE 7201편으로 청주 출발, 11시 30분 오사카 도착, 일본 생활 시작.

비행기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일본을 좋아하는데, 왜 문재인정권은 일본을 미워하는가? 반일이 곧 매국이요 따라서 친일은 매국이라고 강변하는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영락없이 매국노가 되는데, 나는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나는 문재인정권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강변하건 간에 지일이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내 생각에 따라 한일철학대화를 끈질기게 계속해 왔고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특히 노년철학을 정립하고 의미 있게 노년을 맞이하고, 노년에 이르러야 비로소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삶의 맛과 멋과 보람을 젊으신네들과 공감하고 싶다. 그리고 나이듦이야말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우리 늙으신네들이 자각하고 본을 보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야마모토교시 사장과 내일 11시 30분, 기노구니야서점 앞 관장에서 만나기로 약속.



8월 22일 금요일

오전 11시 30분, 기노구니야서점 앞에서 야마모토 교시 사장을 만나, 늘 같이 가던 중화식당에 가서 25일부터 열리는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 국제회의의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협의했다.

1) 한국 측 참가자에게는 숙식비 외에 균일하게 항공료 3만 엔+참가비 3만 엔을 합하여 6만 엔을 지급한다.

2) 김석철 군의 참가는 1일간 예정에서 3일간 참석으로 변경한다.

3) 유성종 선생이 희망한 정통적인 오뎅 석식은 마땅한 데가 없어서 포기한다.

4) 논문집은 일반인에게는 무료 배포한다.

25일 행사장에 갈 때, 교토 다이마루백화점 일구에서, 야마모토 사장과 11시에 만나, 한국 측 참가자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중식을 같이 하고 행사장으로 가기로 약속하다.



8월 23일 금요일

오전 10시, 안마를 받음. 온몸에 안 앞은 데가 없다. 그동안 여러모로 무리가 쌓인 것 같다.

모처럼 이발하러 갔더니 정감 있는 인사로 반긴다. 일본사람들의 손님 관리는 정말 철저하고 섬세하다.

오후 3시에, 안과에서 눈 상태 검진, 이상 없음. 안구피로증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충고 받음. 안약을 받아 귀가하다.

森次郞 지은 ‘인생을 끝까지 살아내기 위한 진화의학 입문(人生を生き抜くための進化医学入門)’ (포리쉬워크Polish Work: 2016)을 완독. 진화의학의 사고방식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건강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하여, 인류 진화의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그런 문제들이 존재하는 이유의 본질을 알게 해준다.

진화의학의 특징은 한마디로 ‘시간’이라는 좌표축을 더해서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이다. 요컨대 삶이란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이란 다름 아닌 나이듦을 뜻한다.

그리고 노화나 죽음이라는 것이 결코 병=질병이 아니라 생명의 정상적인 생리현상일 뿐만 아니라 생명진화에 필수불가결의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이것도 진화의 과정의 한토막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이나 노화에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나 인생 그 자체도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재조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8월 24일 토요일

26일부터 시작되는 미래공창신문사 주최 제1회 노년철학국제회의에 임하는 나 자신의 노년철학을 생사관과 의철학에 관련시켜서 정리 요약하면 다음 6개의 라틴어 문장으로 명제화 할 수 있다.

1) Nascor, ergo morior.(I was born, therefore I die.)

2) Vivo, ergo senesco.(I live, therefore I age.)

3) Senesco, ergo sapio.(I age, therefore I awake.)

3-1. Senesco, ergo deleo.(I age, therefore I pain.)

3-2. Deleo, ergo sapio.(I pain, therefore I awake.)

4) Mors est initium novum.(Death is a new begining.)



이것을 다시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라틴어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한문으로 바꾸어 놓으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出生則入死.

2) 生存則加齡.

3) 加齡則質醒.

3-1. 加齡則感痛.

3-2. 感通則質醒.

4) 死終則新始.



마지막으로 우리말로 요약한다.

1) 나는 태어났으므로 죽는다.

2) 나는 살아 있으므로 나이 든다.

3) 나는 나이듦으로 깨닫는다.

3-1. 나는 나이듦으로 아프다.

3-2. 나는 아픔으로 깨닫는다.

4) 죽는다는 것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8월 25일(일요일) 21:10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서 오래간만에 미야모토 히사오 교수를 만났다. 그동안에 여기저기서 일본어로 타자론이나 아우슈비츠에 관해서 말했던 것을 일본어와 프랑스어로 재정리하고 그것을 프랑스어와 일본어로 출판하는 수고가 많았다는 것 같다. 내용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표현상의 차이를 눈여겨보았던 것이다.

김용환 교수가 ‘장수시대 장수윤리’라는 책을 충북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했다. 동양일보에서 매월 두 번씩 열고 있는 공개강좌에서 강연하고, 앞으로 강연할 예정인 ‘장수윤리론’을 책으로 정리해 놓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될지 궁금하다.

하라다 켄이찌 회장이 안내하여준 순일본적 식당에서, 유성종 선생, 진교훈 교수, 야마모토 교시 사장, 하라다 회장, 나하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담소하였다.

유성종 선생이 일본의 진짜 오뎅을 맞보고 싶다고 해서 유명한 오뎅집에 갔었는데, 손님이 초만원이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칸사이 세미나 하우스에 돌아와 보니, 키타지마 기신 교수와 오오하시 켄지 선생, 시바타 구미코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내일부터 시작한 학술회의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말을 하고서, 쉬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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