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선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박구선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동양일보]약을 사고 약상자 안에 꾸깃꾸깃 접힌 채 들어있는 설명서는 대개 읽히지 않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설명서에 ‘이 약이 인간의 신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른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면 믿을 수 있을지. 일례로 수면장애, 기면증, 과도한 주간졸림증 등의 증상에 대해 처방되는 모다피닐(Modafinil)이라는 각성제가 있다. 이 약은 도파민에서 신경펩타이드, 오렉신, 히스타민의 방출을 간접적으로 활성화한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각성에 기여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약품의 설명서에도 ‘모다피닐이 각성을 촉진하는 메커니즘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The mechanism(s) through which modafinil promotes wakefulness is unknown)’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는 약 뿐만 아니라 의료기기 또는 치료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와 미국 배우인 로빈 윌리엄스가 앓았던 병으로 널리 알려진 신경퇴행성 질환 중 하나인 파킨슨병의 치료법으로 지난 20년간 사용되어 온 뇌심부자극술이 그 예다. 이 병의 증상 완화를 위해 사용되는 이 치료법 또한 우리 몸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 그 메커니즘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비정상적인 걸음걸이나 떨림 증상을 감소시키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에 파킨슨병 치료에 오랫동안 사용되어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작용 메커니즘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이 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복용하는 약의 대부분이 시행착오(Trial and Error)’ 방식을 통해 발견되고 개발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빠르게 해결해야 하는 의학 및 바이오헬스 산업은 지금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먼저 알게 된 답을 질병의 치료에 적용하고 어떻게 치료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차후에 찾는 방식을 택해왔다. 시행착오는 한마디로 답을 찾고 경로를 따라가는 역주행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독일 바이엘사의 해열진통제 아스피린(Aspirin)은 1897년 세상에 나온 지 100여 년이 지난 1995년에 와서야 그 메커니즘이 밝혀졌지만, 아스피린의 효과와 효능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메커니즘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약의 효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예라 하겠다.

지금처럼 시급을 다투며 감염병에 대응하는 시기에 약의 효능은 명확히 밝혀졌지만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다고 약을 상용화하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더 많은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을 것이다. 각종 염증으로 죽어가던 환자들을 살린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도 이런 경우였다. 90여 년 전 개발 당시 제약 기업들의 약품 생산 능력은 매우 저조해 수요만큼 페니실린을 공급할 수 없어 재사용하는 일도 빈번했고, 페니실린을 투약한 환자의 소변에서 페니실린을 추출하여 다른 환자에게 재사용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에게나 염증으로 죽어가는 환자에게나 페니실린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훨씬 더 귀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바이오헬스산업은 이렇듯 인간의 건강 및 생명을 구하는 목적을 우선하여 어떻게 작용하여 치료로 이어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그 원리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갖고 발전해 온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산업이니만큼 신약개발 후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겪고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은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과학자들에게 활용 가능한 데이터로 남아 착오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니 약의 메커니즘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다고 해서 새로운 시도를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질문의 해답에 한 발 다가가는 것이 더욱 긍정적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로 대한민국 바이오헬스산업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다. 이는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줄이는 절호의 기회가 되어 글로벌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바이오헬스산업에 대해 온 국민이 가진 관심만큼 인식도 전환되기를 기대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바이오헬스산업은 필연적으로 시행착오를 거치기 마련이다. 어떠한 결과도 실패로 간주되기 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선택의 의미에 모두가 한마음을 갖고 내일을 위한 주춧돌이 될 수 있다는 이해를 먼저 가진다면 궁극적으로 바이오헬스산업의 가치를 높이는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 큰 결실을 맺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하고 있는 우리 충북 오송의 바이오기업들에게 이러한 국민적 응원과 지지는 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