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동양일보]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이요,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세계인의 날, 부부의 날, 바다의 날까지 들어있는 가히 계절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뭘 해도 맘이 넉넉해지는 5월이지만 올해는 그렇지 못하다. 내일 ‘스승의 날’ 행사야 진즉에 취소됐을 테고, 초등학교 개학에 맞춰 준비하던 일도 부득이 일주일이 늦춰졌다. 5월, 이 좋은 계절이 허탈한 불안감 속에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다.

‘이태원 發’ 코로나 19의 ‘리턴(re-turn)' 때문이다.

영 단어 'Re-리'는 동사나 명사와 결합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접두사로 쓰인다.

‘re’가 ‘다시(再)’라는 의미로 ‘turn'과 결합하니 ’돌아오다, 되살아나다‘라는 뜻이 된다. 이번 ’이태원 클럽‘사태가 생활방역으로 전환해 가던 코로나 국면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 지난 ’신천지‘ 집단감염의 악몽이 되살아날까 두렵다. ‘리턴’이란 용어가 주는 무게감이 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제 코로나 19는 인간계 깊숙이 스며들어 공생 공존하는 존재가 됐다. 지구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임계치에 다다라 코로나가 횡행할 환경을 만들어 줬다. 다만, 잔불이 되살아나 대규모 산불로 번지는 상황만은 막아야겠다. 우선은 철저한 생활방역만이 ’다시‘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펼쳐질 새로운 시대에 ’re-다시'가 꼭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리쇼어링(Re-shoring)’은 어떤가. 과거 중국, 베트남, 태국 등 값싼 인건비를 좇아 해외로 진출했던 오프쇼어링(off-shoring) 기업들이 국내로 생산시설을 다시 이전하는 추세다. 신흥국의 인건비 상승으로 인건비 절감이라는 비교우위가 점점 줄어드는 데다, 로봇, 인공지능 출현과 같은 기업 환경의 변화, 거기에 운송, 보관, 물류체계 등 자국 내 생산비용의 감소로 굳이 위험을 감내하며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더욱이 코로나 19 같은 펜데믹 상황에서 수출입제한과 같은 조치로 인해 자칫 기업의 존폐까지 걱정해야 하는 국가별 위험(country risk)이 남아있어서, ‘유턴(U-turn)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주는 격’으로 국내복귀를 위한 확실한 명분이 되고 있다. 실업률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정부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2013년 8월부터 ‘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을 시행해오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리마인드 서비스(Re-mind Service)’도 한몫을 하고 있다. 공포는 아는 만큼 작아지고, 믿는 만큼 사라진다. 높은 시민의식이 바탕이 됐지만, 사재기도 혼란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게 ‘리마인드 서비스’ 덕이다. 정확히는 ‘인터넷상에서 잊기 쉬운 일을 메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말하지만, 질병관리본부에서 인터넷이나 뉴스, 앱을 통해 실시간 코로나 관련 소식을 상기시켜줌으로써 비교적 단기간 내 손 씻기, 마스크 쓰기를 비롯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다. ‘K-방역’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내며 방역선진국의 면모를 세계 속에 각인시킨 것도 리마인드 서비스의 역할이 컸다.

‘re'와 관련해서 ’회복(recover)’이란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건강이) 회복되다, (곤경 등을 벗어나 정상 상태로) 회복되다’ 등의 뜻을 가진 이 단어야말로 코로나 19 시대에 우리가 바라는 공통 낱말이다. 코로나 19의 귀환을 유발한 그들이 빨리 방역 당국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주길 바란다.



끝으로 ‘리멤버(remember)’를 들고 싶다. 기억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잊지 않는다는 것은 미래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스쳐 지나칠 수 있는 모든 일상이 소중하고 감사해야 할 행복의 원천이란 사실이다. 사소한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느라 더 즐겁고 행복해질 기회를 놓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겠다. 코로나 19 사태로 알게 된 소중한 교훈이다.

익숙했던 만남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떨어져 지냄으로써 더 그리워지는 일상 들, 분주하기만 했던 삶을 돌아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잊지 말고 코로나 19 이후의 삶도

기꺼이 맞아야 한다. 남은 5월은 또 어떤 가르침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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