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시인 / 논설위원 겸 문학평론가

이석우 시인 / 논설위원 겸 문학평론가

[동양일보]필자는 “<정지용시집>이 1934년 10월 7일 발간된 것 같다. ” 는 요지의 글을 본지 풍향계에 게재한 바가 있다. 이글에 대하여 옥천의 정지용 문학관 해설사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실상 필자도 적당한 상황에서 발을 뽑아낼 참이었는데, 이분들의 자용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기 때문에 회피할 엄두를 못 하고, 단물 빠진 껌처럼 안에 넣고 오물대다가 이글을 내놓는다.

우선 이 설왕설래의 ‘지용시집 출판일 담론’은 매우 흥미롭다는 점부터 밝히고 글을 시작한다.

<지용시집>은 1935년 10월 4일 초판이 인쇄되었으며, 발행일은 10월 7일이다. 시집의 정가 1원 20전이며 시문학사에서 박용철이 찍어준 것으로 되어 있다. 출판사 사장이 발문까지 붙여주었다. 당시 1원 20전이면 서울에서의 한 달간 휘문고보를 유학하던 비용이다.

일본 유학은 이보다 곱절의 비용이 필요하게 된다. 당시 시집을 한 권 낸다는 것은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상의 품격을 고양 시킬 수 있는 사건에 해당한다. 자신이 쓴 시집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경성의 어느 다방이든 들어서면, 난리가 난다. 아가씨들 가슴에 지진이 일고 머리에 해일이 스치고 간다. 요즘의 아이돌 열풍을 연상하면 딱 맞는다.

천재 시인 정지용은 그 인기가 아이돌을 능가하였다. 평론가들은 언어의 마술사라고 극찬하느라고 침샘의 바닥을 드러냈다.

1945년 해방이 되었다. 일본인이 이 땅에서 철수하고 1년이 지난 1946년 <정지용시집> 재판이 건설출판사에서 나왔는데 가격이 무려 35원이다. 발행인은 조벽암이었다. 십 년이 조금 더 지났는데 물가가 폭등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초판 발행년도에서 “소화”가 사라지고, 대신 서기를 사용하여, 1934년 10월 7일로 표기되어있는 것이다. 표지갈이만 하였다뿐이지 책의 판형은 시문학사 발행본과 거의 같은 시집이었다. 나는 의심을 바늘 끝에 꿰어 들고 앞으로 가기 시작하였다.

필자의 주장은 건설출판사에서 시집을 만들던 중, 1934년 8월 카프 제2차 사건, 일명 “신건설사사건”이 터져, 박영희, 김기진, 이기영 등 38명의 카프 문인이 체포 후 실형을 받고 12월에는 이 사건으로 이창익이 경성부 삼청동에서 체포되었다가 탈옥하여 다음 해 1월 초 중국으로 망명하는 등, 그야말로 카프 맹원들이 초토화되는 필화사건 속에서 좌파출판사에서 만든 책을 세상에 내놓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예단했던 터였다.

그런데 어느 분이 건설출판사에서 재판을 찍을 때 소화를 세기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35년을 34년으로 잘못 계산할 수도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주셨다.

물론 충분히 일에 날 수 있는 일이다. 더욱 출판일을 두 출판사가 “10월 7일”로 일치시키고 있는 일도 설명이 쉽지 않다.

이 이야기는 초간본의 실체가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는 끝낼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야기는 풀어야 맛이 아니던가. 여러 가지 따져 볼 내용이 많지만 <정지용시집> 출판 직전까지 창작에 집중하였던 지용의 종교시에 한정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카톨릭청년> 9호(1934.2) 60쪽 <다른한울>의 “소란한 世代에서” 부분과 <같은책> 61쪽<또 하나 다른 태양>의 “사랑을 위하얀” 부분이, <시원> 2호(1935.4)에 “소란한 時代에서”와 “사랑을 위하야”로 개작 발표된다. 그러나 정작 <지용시집>에서는 1934년 10월 7일 발행이 완료되었으므로 고쳐서 실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진다.

또한 <카톨릭청년> 16호(1934.9)에 영세명 방제각으로 발표된 <승리자 김안드레아>가 <정지용시집>에 수록되지 않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같은 무렵에 쓴 종교시인데 미수록 된 이유를 어떤 연구자들은 작품의 수준이 낮아서 누락시킨 것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는 지용 시집이 1934년 10월 7일에 이미 발행이 완료된 때문이다.

그러나 반면 <녯니약이 구절>은 <신민>(1927.1) 발표되었으나 지용 시집에 미수록 되어 있다. 설명이 쉽지 않다. 옥천군민들의 지용 사랑과 그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향수의 실개천을 찾아다니는 노 선생님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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