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

행복!,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어느 날 한 우울증 환자가 런던의 유명한 의사 ‘아바네시’를 찾아갔다.

“선생님! 저는 우울증이 아주 심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제발 저의 이 우울증을 고쳐주십시오.”

환자는 간절히 말하며 의사 아바네시를 쳐다봤다. 그러자 의사가 이것저것 몇 가지를 묻고 나서

“너무 염려 마십시오. 마침 잘 됐습니다. 남을 잘 웃기기로 아주 유명한 구리마루디라는 희극 배우가 지금 런던의 어느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희극 배우의 공연을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우울증은 씻은 듯이 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배우의 공연 관람이면 어떤 약보다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의사는 자신 있게 말하며 환자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의사의 말을 듣고 난 환자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선생님! 그렇다면 큰일입니다. 그 희극 배우 구리마루디가 바로 저니까요!.”

오늘날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즐거운 나의 집> 즉 <홈 스위트 홈>의 작사자 <존 하워드 페인>은 한 번도 가정을 가져보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을 집도 절도 없이 물론 아내도 자식도 없이 유리표박의 방랑으로 부초처럼 세상을 떠돌아 죽을 때도 튀니스의 한 길가에 쓰러져 눈을 감았다.

그가 안주(安住)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위트 홈>이 아닌 한 이름 없는 노변(路邊)이었다.

메텔를링크의 <파랑새>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는 파랑새에서 이렇게 말했다.

“뭐야. 저게 우리가 그렇게 찾고 있던 파랑새야? 우리는 아주 멀리까지 파랑새를 찾으러 갔었는데 그 파랑새는 늘 저 새장에 있었잖아?.”

행복의 파랑새를 찾으러 갔다 허탕 치고 돌아와 보니 그렇게 애타게 찾던 파랑새는 바로 새장 안에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킬레스의 뒤꿈치는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완전무결한 사물일지라도 그 나름의 결점을 있게 마련이다.

<저 산 너머 멀리 한없이 가면

행복이 깃들이고 있다기에

아, 나는 그를 따라갔건만

눈물을 흘리며 되돌아왔네

저 산 너머 멀리 한없이 가면

행복이 숨어 있다 남은 말하네>

- 칼 부세의 저 산 너머-

행복이란 누가 가져다 주는 게 아니다. 이는 우선 의사 아바네시를 찾아간 구리마루디의 일화에서 알 수 있고 <즐거운 나의 집> 작사자 하워드 페인에서 알 수가 있다.

사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해 그렇지 행복은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건강한 것도 행복이오 좋은 친구를 가진 것도 행복이다.

자신을 반겨 맞아줄 사람을 찾아가는 것도 행복이오 자신을 찾아 멀리서 벗이 찾아오는 것도 큰 행복이다.

그러기에 이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첫머리에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하며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하라 했을 터이다.

심지어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이마고 현상>, 즉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었으면 하는 이상적인 존재나 사물도 행복이라면 행복이다.

때문에 행복이란 정신적인 내재율로서의 만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행복이란 행복하다는 의식과 감정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이렇게 볼 때 행복이란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어서 행복감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귀봉 송익필(龜峰 宋翼弼)의 <족부족(足不足)>이란 시보라 더 좋은 건 없을 터이다.

'부족하더라도 넉넉하게 생각하면 매사가 넉넉하고, 족하더라도 부족하게 생각하면 늘 부족하다는 부족지족매유여(不足之足每有餘)에 족이부족상부족(足而不足常不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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