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을 사랑한 메리놀회 함제도 신부

17일 청주를 찾은 함제도 신부가 청주교구 공동사제관 최양업관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한국에서 보낸 60년은 은총입니다. 무엇보다 청주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가장 그립고 애틋해요. 제 고향은 청주입니다”

올해로 한국 파견 60주년을 맞은 메리놀회(미국 가톨릭 외방전교회) 선교사 함제도(87) 신부.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푸른 눈의 함 신부는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자신의 고향을 청주라고 말한다.

그런 그가 한국에서 60년간 선교사로 살아온 생애를 기록한 회고록 <선교사의 여행>을 펴내고 17일 휴가차 ‘고향’ 청주를 찾았다.

함 신부는 자신을 ‘청주 함씨’의 시조라고 소개하더니 올해로 벌써 우리 나이 미수(米壽·88세)에 접어들었다며 웃어 보였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 사람 같은 함 신부.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그의 본명은 ‘제라드 해먼드’다.

1960년, 첫 선교지인 한국에 온 그는 1989년 메리놀회 한국 지부장에 임명되기 전까지 청주교구 북문로·수동·괴산 성당에서 주임신부로 일했고 청주교구 총대리 신부로 활동했다.

무엇보다 그는 1960년대 수동성당과 성안나 유치원을 신축한 신부로 청주교구 신자들의 가슴속에 기억돼 있다.

당시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 가난과 질병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그는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으로 수동성당을, 어머니가 남긴 유산으로 수동성당 부설유치원인 성안나 유치원을 지었다.

함 신부는 “외동 아들이었기 때문에 유산을 모두 받을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웃더니 “수동성당을 짓고 미국에 계신 어머니를 모셔다 회갑잔치도 해드렸다”고 자랑했다.

그는 1960년에 한국에 와서 30년 동안 청주교구 사제로 지내며 가난했던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했다. 1989년 이후 메리놀회 한국지부장으로 일하면서 지난 30년 동안은 가난하고 아픈 북한 사람들을 위해 60여 차례 방북하는 등 다시 그들과 ‘함께’ 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메리놀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 메리놀 선교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메리놀 소신학교 시절 단짝 친구였던 장익 주교와의 만남으로 한국에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며 “처음에 한국에 간다고 하니 할머니께서 많이 우셨다”고 회상했다.

이번에 발간한 책 <선교사의 여행>은 함 신부의 생애를 2019년 8월부터 12월까지 9회에 걸쳐 이향규·고민정·김혜인 씨 등 3명의 연구자들이 인터뷰해 정리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책에는 ‘남북한을 사랑한 메리놀회 함제도 신부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책은 미국(1부), 한국(2부), 북한(3부)의 이야기 끝에 결국 노사제의 마음(4부)에 다다르는 긴 여행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삶은 기차여행과 같다. 이 여행은 기쁨, 슬픔, 환상, 기대, 만남과 이별로 가득하다”며 “기차에서 만난 승객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함께 가게 된다면, 서로 사랑하고 도와준다면, 그건 참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고 고백했다.

좋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그는 여생의 종착역을 ‘고향’이라 부르는 청주로 정했다. 이미 청주교구 공동사제관 최양업관(청주시 청원구 주성동 주성로 321)에 방도 마련해 놓았다.

그는 “청주교구 성직자 묘지에 2명 분의 묏자리도 마련했다”며 “내가 몸집이 커 2인분이 되니 2명 분의 자리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농담을 던졌다. 글·사진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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