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모 문학박사·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주무관

강찬모 문학박사·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주무관

[동양일보]●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느티나무

앞으로 진천은 포석 문학을 ‘집대성(集大成)’해야 하는 큰일을 앞두고 있다.

진작 했어야 했던 일이라 후학으로서 면목이 없다. 이제라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마음으로 지역민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문학관 건립’과 ‘문학제 개최’로 포석을 기릴 수 있는 기본적인 공간과 선양 사업은 진행되고 있지만 ‘생가(生家) 복원’과 조명희 이름을 새긴 본격 ‘문학상 제정’은 아직 일보를 내딛지 못한 실정이다.

이 두 가지가 실현된다면 포석의 삶과 문학이 명실상부하게 집대성된 외관을 갖추게 된다. 이후 그의 삶과 문학을 일상으로 향유하며 랜드 마크로 키워내야 할 숙제는 오로지 우리의 몫으로 남는다.

포석 문학상 제정은 최근 폐지키로 결정한 ‘미당 문학상’ 소식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시(詩)만을 놓고 본다면 자타가 공인할 수밖에 없는 한국문학의 큰 산이다. 시를 꿈꾸는 문청(文靑)들은 누구나 한때 열병처럼 홍역을 앓았던 앙망(仰望)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친일행적과 5공 군사정권을 찬양한 과거가 주홍글씨가 되어 끝내 문학상이 폐지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박경리는 “아무리 위대한 예술도 그 터전으로서의 삶을 능가하지 못한다”고 했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인간의 2차 표현 행위일 뿐이다. 표현 행위의 원형은 삶과 현실이라는 위대한 재료를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이 괴력난신(怪力亂神)의 허무맹랑한 환상이 아니라 두 발이 딛는 인간의 삶 속에서 길어 올린 애환일 때 갈증을 달래 주는 감로수(甘露水)가 되는 것이다.

미당 문학상 폐지는 삶의 ‘진실’에 기초하지 않는 문학은 아무리 미문(美文)이라고 해도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입증된 사건이다. 삶이 곧 글이 되는 사람의 글에서 깊은 ‘공명(共鳴)’을 받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형식주의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강조했던 ‘미학(美學)’과 ‘작품성’이란 개념을 뛰어 넘는다. 미학과 작품성이 서구 이론에 기초한 현학적 방법론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역사 속에서 각 시대가 처한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각성된 ‘공동체의 정신’이 바로 ‘시대정신(時代精神)’이며 이를 문학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한 글의 ‘메시지’가 미학이며 작품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포석 문학상 제정이야 말로 ‘삶 자체가 글이며 글 자체가 삶’이었던 포석의 생과 문학을 총체적으로 집약하여 그 뜻을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기념비적인 일이 될 것이다.

끝으로 필자가 느티나무를 소환한 것은 생가 복원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생가는 세월이 흘러 자취가 사라지고 그 근방을 어림잡을 뿐이다.

이런 희미한 상황에서 느티나무는 포석 생가의 위치를 유일하게 말해주는 ‘표식(標式)’이다. 포석 문학 집대성의 한 축인 생가 복원이 암초를 만난 상황에서 천운이란 생각을 한다.

느티나무는 ‘명희네 집’ 앞마당에 있다고 할 정도로 생가와 지척이다. 몇 분 안 남은 원주민들의 어렴풋한 기억에서도 느티나무는 한결같이 등장하여 아슴푸레한 기억을 더듬는 ‘매개’가 된다.

또한 이 기회에 ‘고깃집’이 들어선 느티나무 주변 환경도 쾌적하게 만들어야 한다. 주야로 풍기는 매캐한 살육의 냄새에 어떻게 청정한 일신을 보존할 수 있단 말인가. 흠모하는 마음으로 옷깃을 여며야 할 장소가 질펀한 선술집으로 변해 ‘명정(酩酊)’이 판을 치는 것은 한 인간의 순절(殉節)한 삶을 짓밟는 천박한 ‘패륜(悖倫)’이다.

당장 우려스러운 점은 느티나무의 생육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236년의 수령이라고 하지만 보통 오래된 느티나무는 500년 수령에도 청정한 기상을 자랑한다.

나순옥 포석문학회장의 말에 의하면 “느티나무 주변이 온통 콘크리트로 덮어 있어 나무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다. 숨통이 조여 오는데 어떻게 신진대사를 원활이 할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문제점은 느티나무가 수암 경로당과 고깃집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이다. 틈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건물의 지붕 위쪽으로 뻗는 튼실한 가지를 잘라낸 상처가 곳곳에 흉물처럼 보인다. 건물에 가로거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지른 ‘만행(蠻行)’이다.

이곳은 느티나무의 땅이며 느티나무가 원주민이다. 하루 빨리 느티나무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여 본래의 기상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236년 동안 동네를 스쳐가거나 정착하며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 삶의 일부인 느티나무를 이렇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저 느티나무를 진천과 벽암리를 생각할 때마다 특별한 추억이나 그리움으로 회고하는 진천의 전부일 테니까.

더구나 정신과 문향(文鄕)의 마을인 진천의 ‘관문(關門)’ 벽암리가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관문은 안쪽과 바깥을 구분하는 경계로 늘 긴장이 감도는 곳이지만 밖에서 복이 들어오는 구복(口福)의 초입으로 한 지역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얼굴이다. 얼굴에 ‘분(粉)’을 발라주지 못할지언정 ‘분(糞)’칠을 해서 될 일인가.

강신재는 소설 ‘젊은 느티나무’에서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고 했지만 필자는 벽암리에 서 있는 저 느티나무에게서 포석의 냄새를 맡는다. 비누냄새보다 깊고 진한 대륙의 야성(野性)과 고향을 그리는 모성적 체취를 함께 맡는다.

포석은 그런 사람이었다. 야성은 실천과 행동으로, 가슴엔 민족과 동포를 향한 따뜻한 모성애를 품은 사람이었다. 두 냄새가 포석의 인격임은 물론이다. 느티나무는 포석의 ‘배냇저고리’의 냄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젖 내음이 물씬한 그 비릿한 향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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