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할아버지 가게 맞은편에 지선이네가 산다. 마당이 제법 넓은 집이다. 바로 길옆에 마당이 접해 있는데 안채인 본 건물은 쑥 들어가 마당 저 안쪽에 있다. 왜 마당이 넓은가 했더니 거기엔 늘 트럭 아니면 반 트럭 하며 일반 승용차들이 오전이면 빼곡히 들어차 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빵을 배달하기 위함이란다. 그러니까 지선이넨 빵집이라 그 빵을 오전이면 각처에 실어 나르는 거였다. 그만큼 빵집은 컸다. 나는 삼청동 산기슭에 있는 초등학교(국민학교)엘 다녔는데 점심때면 빵을 탔다. 실은 빵값으로 한 달에 얼마큼씩 빵값을 내면 주는 것이었지만 나는 그 빵을 점심 대용으로 먹지 않고 하교 후 집으로 가져와 동생과 먹었다. 그때 엄마가 그것이 지선이네가 만든 거라는 걸 알았다. 속에 팥 속이 들어 있는 빵이었다. 얼마나 맛이 있던지 지선을 한없이 부러워했다. 지선인 나와 동갑인데도 나보다 훨씬 키가 크다. 기운도 세다. 하지만 씨름이라든가 마라톤을 하면 나를 이기지 못하고 꼭 2등을 한다. 나는 숨이 차도 죽어라 하고 하지만 걔는 힘 하나 안들이고 그냥 피식 웃고 마는 거다. 나는 그런 그 애가 늘 부러웠다. 나는 오기로 걔를 이기기는 하지만 거의 녹초가 돼서 그 자리에 쓰러져 있지 않는가. 그런 나는 내 옆에 우뚝 서서 나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는 그 애에게 패배감을 느끼곤 했다. 그리고 그게 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팥고물이 들어 있는 맛있는 빵을 실컷 먹었기 때문일 거였다. 나는 학교에서 빵 하나를 타면 혼자 그 자리에서 여느 애들처럼 다 먹어 치워도 되련만 집에서 형이 빵 타 오기를 기다리는 동생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그대로 가져와 그것도 반씩 나누어 먹으니 무슨 힘을 낼 것인가.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는 6.25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그 빵을 반만 먹었다.

그 후 서울이 수복되고 우리가 피란지에서 돌아와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다. 그 지선이넨 빵집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알고 있던 전 빵집의 성황과는 달리 차들도 없이 조용했다. 그런데 그 지선이 큰형이 우리 집을 찾는 일이 잦았다. 그게 나의 누나 때문이라는 걸 눈치챘다. 누나는 나보다 4살 터울로 18살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6,25가 일어나 순전히 우리 형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고 집에서 살림을 관장하면서 서울역 앞 남대문에 있는 양재학원에 다니고 있는 꽃다운 처녀의 신분이었다. 그 지선이 큰형은 키가 후리후리했다. 한 번도 면식도 없는 그는 처음엔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접근했다. 나는 그게 고마워서 아무 부담 없이 받아들였는데 다 배운 알파벳을 가르치면서 흘깃흘깃 누나 쪽을 훔쳐보면서 나의 영어 가르침은 뒷전이었던 거다. 그러더니 하루는 나더러 누나를 한번 만나게 해달라는 거였다. 그걸 누나에게 고대로 전달했다. 누나는 그 소리를 듣고 그가 오는 날은 일체 우리 둘 앞에 얼씬거리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하루는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이제 영어는 고만 배우라고. 나는 그게 누나가 지선이 형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아채고 그 형 대하기를 달갑게 여기질 않았다. 그걸 알았는지 그 후부터는 우리 집엘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러나 지선이와는 가깝게 지내려 했지만, 그때는 제가 나보다 키도 훨씬 크고 덩치도 좋아서인지 나와는 상대하지 않으려는 눈치가 역력히 보여 나도 그 애를 멀리했다. 이러해서 결국은 그 집과는 멀어지는 듯했는데, 어느 날 지선이가 날 찾아왔다. 자기네 집이 이사한다는 거다. 그러면서 빵을 몇 개를 나에게 주면서, 이사 가서는 빵집을 하지 않고 다른 걸 한다고 했다. 그러니 이 빵이 저의 집에서 만든 마지막 빵이라는 거다. 빵을 받아 들고 주춤주춤하는 나에게 말했다. “우리 형이 너하고 놀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이사 가는데 우리 집에서 만든 빵이라도 너에게 주고 가려고….” 그리곤 이내 돌아서 내빼듯이 가버렸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아무 소리도 못 하고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그 빵을 역시 동생과 나누어 먹었다. 전에 먹었던 팥 속이 들어 있는 맛있는 거였다. 그 후 빵을 먹을 때는 소식 모르는 지선이와 지선이 형이 생각나고 시집간 누나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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