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기 한국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장

박병기 한국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장

[동양일보]우리의 목숨은 숨과 숨 사이에 있다. 세상으로부터 공기를 빨아들이는 들숨과 그것을 다시 밖으로 내보내는 날숨 사이에 우리의 목숨이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쉽게 의식하지 못하는 이러한 숨의 흐름은 살아있음 그 자체의 징표이자 내가 의존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다른 한편 목숨은 생명(生命)을 의미하기도 한다.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요건으로 부모에의 의존과 함께, 타고나야 하는 수명을 꼽은 우리 불교 전통의 생명관에 따르면 그 생명은 의존적이자 유한한 것이다. 태어나서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부모에게 의존하고 그 이후에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만 비로소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의 생명은, 유한성의 끝에 이르면 다른 사람에게 더 크게 의존하다가 마침내 사라진다. 유교 윤리에서 모든 윤리의 출발을 부모와의 바람직한 관계로 보고 시묘살이 같은 마지막 봉양을 강조한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세기 동안 앞장서 받아들인 자본주의 철학에 따르면, 인간은 고립되고 이기적인 존재이고 단지 자신에게 돈벌이가 될 때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조선 후기에 경직된 이념으로 전락한 유교가 강요해온 가문이나 남성 중심의 삶을 극복하고 누구나 먹고살 만한 경제력을 갖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고, 실제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 동안에 그런 성과를 거둔 나라로 평가받게 되었다. 정치적인 민주화에서도 그 이상의 성과를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자본주의 논리의 과잉이다. 익명의 사회에서 구체적인 관계를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겼고, 그 관계 속에서 최소한의 정직성을 전제하는 상품 거래를 통해 유지하는 삶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깔끔함을 가져다주었다. 가끔 방송에 나오는 식당의 불결한 환경을 보면 염려되기는 하지만, 그들의 돈벌이와 나의 음식 섭취를 통한 생명 유지는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우리는 그런 편리함과 풍요로움, 깔끔함 등을 누리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관계를 돈의 논리로 환원시키는 엄청난 흡입력에서 생긴다. 어느 단계를 넘어서면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관계에는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는 비정의 일상 속으로 누구나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지금 국회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라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중대 재해를 돈 핑계로 방치하는 기업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위험의 외주화’라고 불리는, 위험한 일은 본사 직원이 아닌 외부업체에 맡겨 싸게 처리할 뿐만 아니라 혹시 사고가 생겨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기업의 행태를 법으로 막아보자는 취지이다. 이 취지에 교수, 연구자, 작가, 종교인 등 수많은 사람이 지지 성명을 내고 차가운 국회 앞 농성장에서 릴레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의 목숨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그 소중함은 모든 인간을 넘어 생명체로 확산한다. 목숨이 소중한 이유는 그것이 모든 것들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에서 ‘기본 신념’이라고 부르는 이 명제는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단화와 주변화라는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목숨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했고, 그 소중함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목숨이 숨과 숨 사이의 흐름이고 서로 연결돼 의존적일 때만 존재하는 유한한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떠올리면, 이런 수단화와 주변화는 그 자체로 성립할 수 없는 폭력이다. 그들의 목숨이 위험하면 우리 목숨도 함께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는 관계성의 진리를 깨닫는 연말연시의 시·공간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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