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구 청주시 청원구 산업교통과 팀장

한현구 청주시 청원구 산업교통과 팀장

[동양일보]학창 시절 공부가 싫고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직장에 다녀보니 사회생활이 몇 곱절이나 어려운 줄 미처 몰랐다. 결혼 초기에는 아내의 힘이 그같이 센 줄 몰랐다. 코로나19나 쓰나미에 비견될 만큼 아주 강하다. 아이를 낳아 키울 땐 이것저것 서툴고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에 맡기기도 했는데 사랑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존재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부모의 역할과 자식의 도리가 무엇인지 아이들이 커가면서 점점 더 알아가는 중이다. 나이 든다는 게 무언지 이제 알 듯 모를 듯하다.

때론 너와 나, 둘 다 옳거나 혹은 둘 모두 그를 수 있음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어느 날인가 내 탓임에도 남 탓만 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누군가는 상어를 잡기 위해 기다란 낚싯대를 뱃전에 드리우고 또 어떤 이는 고통을 덜어 주려 상어 입에 꿰인 낚싯바늘을 빼주는 데 힘쓴다는 사실을 몰랐다.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가 바람에 날리고 넘실거리는 물에 실려 태평양 바다까지 흘러가는 줄 몰랐다. 호주와 한국에 한 해에도 가뭄과 홍수가 번갈아 나타나 농부를 시름케 함을 안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설(雨雪)을 볼 때면 감상은 꿈도 못 꾸고 낮엔 낮대로 밤엔 밤대로 잠 못 이루고 걱정할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수개월에 걸친 결산 업무를 할 적엔 숫자 퍼즐이 죄다 맞길 바라면서 젓가락조차 정성껏 밥상 위에 가지런히 놓게 될 줄 몰랐다. 직장 동료가 가장 고마운 존재이면서 때때로 아주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걸 예전엔 잘 몰랐다. 펜대를 굴리는 일이 많은 이의 행복과 불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항상 신중해야 함을 뒤늦게 깨우쳤다. 퇴직이 코앞에 닥치니 명퇴가 남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얘기란 걸 알았다.

‘괜찮겠지’ 하다가 살짝 옆 차를 긁어서 수십만 원씩이 두어 차례 나간 뒤에야 늘 주의해야 함을 깨달았다. 운전하다가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올 줄은 몰랐다. 한번 뱉고 나니 욕이 절로 이어질 줄은 더욱 알지 못했다. 문득 십수 년을 같이 한 내 차가 무척이나 감사한 존재란 걸 느꼈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웃은 모른 채 단독주택 대신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TV 보다 유튜브를 가까이하게 될 줄. 이미자의 옛 노래 ‘여로’가 언제부턴가 귀에 정겹게 들려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가 될 줄 짐작조차 못했다. ‘응팔’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며 처자식이 볼세라 흐른 눈물을 몰래 훔치리라곤 예전엔 생각지 않았다.

우리 한글이 그토록 과학적이고 글 자체가 아름다우며 발음이 음악적인지 예전엔 몰랐다. 구한말 어둑했던 시기, 외국인이 한민족의 처지를 걱정하면서도 미래만큼은 낙관한 걸 몰랐다. 일제강점기 때 군인으로 끌려간 조선 청년들이 전범으로 재판받고 여태 명예 회복을 못한 줄 미처 몰랐다.

깜깜한 절망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이 더욱 빛을 발함을 몰랐다. 조건 없이 주어지는 매일 아침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몰랐다. 인류가 더불어 사이좋게 살라고 신조차 공들여 만들어준 아름다운 지구임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내가 도무지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아직 제대로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이 두 가지 사실만큼은 이제 확실히 안다. 그나마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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