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택구 충청북도농업기술원 친환경연구과 농업연구관

정택구 농업연구관.

[동양일보]지난해는 한 달이 훌쩍 넘는 긴 장마와 한반도를 관통한 여러 번의 강도 높은 태풍, 농작물이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서늘한 기후 등 유례없는 기상이변으로 농업인의 마음을 아프게 한 해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이상기후에 따른 농작물 흉작은 쌀 뿐 아니라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여러 농산물의 가격이 제법 오른 한 해로도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서 우리가 매일 먹는 쌀은 1년간 한 사람이 한 가마도 안 되는 60kg 남짓한 양밖에 소비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가격으로 환산하면 20만원을 넘지 않는 액수로 한 가족의 한 두 차례 외식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쌀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구석 어딘가 씁쓸할 따름이다.

농촌에서는 벼농사를 일명 ‘건달농사’라고 부른다. 벼는 육묘이후 이앙을 마치고 가끔 논 물 관리를 하다가 농약을 칠 때는 공동방제로 해결하고 이삭거름 비료 한번 주고 나면 수확 시기가 돌아온다. 이러한 상황은 90%가 넘는 벼농사 기계화에 따른 농업기술 발전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반면에 밭농사는 파종, 정식 이외에 풀매고, 북주고, 순지르고 등등 쉴 틈 없이 작업이 도래하니 말이다. 그러나 쌀미(米)자를 풀어보면 농부가 팔십팔(八十八)번 손이 닿아야 할 만큼 수고해야만 수확할 수 있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 벼농사는 결코 건달이 짓는 농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쌀은 탄수화물 덩어리라서 비만이나 당뇨병 등 여러 가지 성인병과 다이어트에 치명적이라는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를 살펴보더라도 쌀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좋은 탄수화물로 적당량을 섭취하면 운동의 에너지원이자 심지어 근육 손실도 막아 준다는 이로운 내용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은 ‘밥심’에 있다고 하였다. 사전적 의미로 밥심은 ‘밥을 먹고 나서 생긴 힘’의 뜻으로 원래는 ‘밥힘’이지만 발음하기가 어려워 ‘밥심’으로 표기하는 것이 표준어라고 한다.

부모 품을 떠나 도시로 나가 생활하고 있는 자식의 안부가 궁금하면 어머니는 전화로 매번 ‘밥은 제때 먹고 다니냐?’로 시작된다. 요즘 끼니 거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자식이 별 탈 없이 잘 지내는가를 묻고 바라는 마음이 ‘밥’ 이라는 한 단어에 묻어 있는 것이다.

요즘 대학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타지에 혼자 생활하고 있는데 가장 힘들고 성가신 일이 한 끼의 밥해결이라고 한다. 집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집밥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커서 제대로 ‘밥값’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귀가 아프게 듣고 자랐다. 또한 일하다 밥 때가 되면 우리나라 사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라며 ‘밥 먹고 합시다’라고 누가 먼저 말한다. 이렇듯 날마다 먹는 삼시 세끼지만 밥의 의미는 다양하고 각별하다.

요즘 코로나19로 우리는 모든 부문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지침이 완화되면 이번 달이 가기 전에 가끔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았던 오랜 친구에게 ‘밥 한 끼’ 하자고 연락 좀 해야겠다. 우리는 예전부터 ‘밥심’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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