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장

 
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장
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장

 

[동양일보]지난해부터 이어진 아동학대 관련 소식은 너무나 참혹해서 일부러 기사를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특히 양부가 학대로 죽음에 이르게 한 정인이 사건은 더욱 그렇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또 일어나고 있는가?

정치권에서는 처벌 강화를 만능 처방전처럼 내놓고 법률 개정을 서둘렀다. 사회적 비난과 개탄의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드높다. 엄한 벌과 사회적 비판이 아동학대를 멈출 수 있을 것인가?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수가 2015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8.6%)했다. 초록어린이재단 조사 결과다. 조사 기간(2020년 1~8월)에 코로나19가 극심했던 경북은 40%가 급감했다. 아동학대가 줄었다기보다 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아동학대 조기 발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탓이라 분석한다. 가정 밖으로 아동학대가 알려지지 않고 신고 의무자인 교직원의 신고가 대폭(82%) 줄었기 때문이다.

학대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신고하면, 전담 공무원이나 사법기관이 개입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면 앞으로 아동학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인가? 장담할 수 없다. 이 모든 조치는 대증처방이지 원인 처방이 아닌 까닭이다.

아동학대는 아동의 건강이나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뜻한다. 아동 유기나 방임도 이에 포함된다. 이러한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원인이 하나는 아닐 것이다.

부모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상황, 교사의 열악한 근무 여건 등도 환경적 원인일 테고, 성인의 분노 조절 실패도 그 한 축을 차지할 테고, 폭력을 훈육의 방법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도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러한 모든 원인의 근저에는 잘못된 아동관이 자리 잡고 있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마음대로 다뤄도 되는 소유물로 본다든지, 어른처럼 존중해주지 않으면서 어른의 윤리적 기준을 강요하는 대상으로 본다든지, 아이의 내적 욕구와 행복을 무시하고 부모 등 성인의 욕망과 꿈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보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아동관의 전형이다.

아이는 어른의 소유물이 아니며, 어른의 축소판도 아니며, 어른의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다. 아이는 자신만의 무한한 세계를 가진 존재다. 아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과 능력을 갖춘 인격체다. 아이는 자신만의 목적을 가진 존재, 성장과 성취와 행복을 위한 존재다. 그러므로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첫 번째 존재다.

아이를 어떤 존재로 바라볼 것인가? 이에 대해 정말 감동적인 시가 있다.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 아이들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과 딸들이니, / 아이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그대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 또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의 소유가 아니다. / (중략) /

그대는 활이며, 그대의 아이들은 살아 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 그래서 활 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에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더 빨리, 더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 (후략) / (칼릴 지브란, <예언자> 중에서.)

아동학대를 멈추기 위해 여러 제도적 장치와 공적인 투자가 있어야 할 것이다. 캠페인 등 사회적 관심도 크게 불러일으켜야 할 때다. 부모교육도 강화돼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무엇보다 아동관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 같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삶을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부모의 의미, 양육법, 올바른 아동관 등을 좀 가르치면 어떨까 싶다. 요즘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이 참 많기도 하지만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 한둘보다 더 소중한 가르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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