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노랫소리가 그쳤다. 한참을 듣지 못했다. 아침의 규칙 같던 노래들이 들리지 않는다. 초등학교가 겨울 방학을 하니 아이들이 나오지 않고, 학교는 노래를 틀지 않는다. 노래 그친 운동장에는 대신 눈이 내려 쌓이고, 하얀 눈 위에는 어린 발자국 하나 없다. 눈만 가득, 아이도 노랫소리도 눈사람도 없다. 해가 높이 뜨면 운동장의 눈은 햇살 닿는 자리부터 아깝게 녹겠다.

계절이 깊기 전, 눈도 내리지 않을 때는 노년의 두 여성이 아침마다 운동장을 느릿느릿 걷다가 국기 게양대 옆에서 아이들처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막 어둠이 가신 이른 아침에 그 모습은 정겨웠다. 어른도 친구는 필요하니 둘이 조근조근 마음을 나눠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요새는 어디서 만날 수나 있을까 싶다.

이상하게도 부모를 떠나 살기 시작한 뒤로 이사할 적마다 학교 앞에 살게 됐다.

대학교의 공대 건물 가까이 살 때는 학생들이 밤새며 뭔가를 하다가 졸음을 쫓는지 기운이 넘치는지 시멘트 포장 바닥에 턱턱 농구공을 튕겼다. 한밤중에 운동 소리는 옅게 잠든 날은 성가시기도 했다. 뒤척거리다 내다보면 청춘들이 공을 주고받으며 기운차게 이리저리 내닫고 있었다. 잠결에도 그 기운은 부러웠다.

초등학교 근처에 살면서는 아침마다 동요를 듣는다. 등교 시간마다 노래는 운동장을 건넛집 안까지 흘러넘쳤다. 습관처럼 국기가 어떻게 펄럭이는지, 운동장에 위험한 건 없는지, 이상한 자태로 머뭇거리는 사람은 없는지 교정을 내다보게 됐다. 선거철이면 투표하려고 늘어선 줄을 보기도 하고, 소풍 철이면 운동장을 그득 메우는 버스들을 보며 덩달아 설레기도 한다.

줄을 지어 차례로 공을 차고, 받기도 하며, 줄넘기하고, 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세상이 잘 가고 있는 것 같은 막연한 안도가 생겨나기도 한다.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아이는 어울리지 못하는가 싶어 마음이 쓰이고, 홀로 있는 아이들끼리 만나게 해주고 싶기도 하다. 아이들 사정을 혼자 짐작하며 마음을 모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아침마다 들리는 동요는 오래전 곡들이어서 곁다리로 듣는 처지에 좀 싫증이 나기도 한다. 아이들 듣는 건 새 노래가 나오지 않는지, 자주 듣다 보면 한 곡이 끝나고 다음으로 갈 때 순서를 맞추는 일도 벌어진다.

대학은 바이러스 때문에 두 학기를 비대면으로 수업했다. 집에서 강의를 만들고, 학생들 얼굴 대신 컴퓨터 화면을 보며 녹음하고 수업을 했다. 온라인에 맞게 강의를 만들자니 새삼 품이 들고,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적응이 필요했다. 민주 시민답게 밖에 나가지 않으려고 집 안을 정리하기도 하고 보지 않는 책을 솎아내 버리기도 했다. 화분을 이리저리 옮기거나 이불을 빨아 다림질하기도 했다. 평소에 많이 나다니지도 않았으면서 나가지 않으려니 마음 한 켠은 물물이 어디로 달려가기도 하고. 운동장에 가득하던 아이들과 국기게양대 옆의 두 여인은 그들 방식으로 잘 견디고 있는지.

질병 시대 이후, 달라질 삶에 대해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건 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의 예측일 뿐, 겪어보아야 알 일이다. 누구도 모른다는 게 맞을 수 있다. 모르면 불안하고 불안하면 두려워하게 되니 미래의 불안에 저당 잡히지 않도록 놀면서 한고비 넘기는 것도 좋겠다. 어떤 일에도 담대할 만한 두터운 마음이 없어도 놀면서 어려움을 통과할 수도 있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 호모루덴스니까 놀이를 통해 불안의 긴장을 풀고 쉬며 생기를 찾기도 한다.

자연스럽다는 핑계로 염색 않은 지 오래된 흰머리에 요란하게 색을 입히는 파격이라도 도입해볼까 뜬금없이 생각한다. 단일민족의 검정계열 말고 핫핑크나 바이올렛 빨강 같은 놀라운 색깔을 머리털에 칠하면서 덤덤한 일상이 잠깐 놀라워지도록 저지른다면. 실용이나 미용이 아니라 놀이로, 세상이 바뀌는 것도 아니라고 머리카락으로 대범한 척해본다면. 감당못하도록 요란하면 자가격리를 더 열심히 하자고 비상하게 용기를 끌어모으며 동굴 같은 한 시절을 넘어간다면 그것도 재미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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