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필두로 최근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에 이르기 까지 K-pop의 인기는 전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빌보드 차트도 더 이상 외국 가수들만의 무대가 아닌 우리에게도 익숙해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대중문화의 변방이 아니라 중심이 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이 같은 K-pop의 역량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 수많은 가수들의 노력과 헌신, 그리고 대중들의 관심과 애정이 쌓여서 지금의 K-pop이 되었을 것인데 이는 최근의 역주행 노래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추억의 가수들이 출연함으로 인해 과거에 출시된 노래들이 재조명되고 음원차트의 상단에 오르는 이른바 역주행 열기가 상당하다. 그 중에서 필자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긴 노래 중 하나가 바로 미미 시스터즈의 ‘우리 자연사하자’라는 노래이다.

원래 미미 시스터즈는 장기하와 얼굴들이라는 밴드의 뒷편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무표정한 모습의 두 사람이 세트로 춤추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던 2인조 그룹이었다. 그냥 B급 신비주의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들이 2018년 미미 시스터즈 10주년 기념으로 발매한 EP음반의 타이틀곡 ‘우리, 자연사하자’가 최근 주목 받고 있다. 당시에는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만 관심을 받았던 곡이었지만 최근 곳곳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들이 일상화 되면서 미미 시스터즈가 노래했던 ‘자연사하자’는 말이 더 이상 난데없는 말이 아니게 된 것이다.

미미 시스터즈는 ‘우리, 자연사하자’는 노래를 통해 ‘혼자 먼저 가지 말고 너무 열심히 일하지도 말고 힘들 땐 힘들다 무서울 땐 무섭다고 말하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마냥 다 가졌다 생각하지 말고 아플 땐 의사보다 퇴사를 하라’고 한다. 기성세대들이 다음 세대들을 보면서 정말 저렇게 말한 적이 있었을까? 회사에서는 항상 그들에게 열심히 일하라고 한다. 개인의 삶 보다는 조직의 비전과 자신의 비전을 일치시키라고 한다. 무섭고 힘든 일이 있으면 두려워 말고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아프면 그들의 아픔을 걱정하기 보다는 그들이 아파서 비어버린 업무를 걱정하기도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게 하였을까? 흔히 말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힘들게 자라지 않아서, 배고파보지 않아서, 부모가 과잉보호해서 문제라는 것이 취업 준비에 허덕이고 막상 취업해서도 과도한 업무에 좌절하고 내 집 마련은커녕 고시원 한켠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들에게 가당키나 할 말일까?

일부 기성세대들은 그들에게 공정한 경쟁과 능력에 따른 결과를 약속하기도 한다. 일견 타당한둣 하지만 세상에 정말이지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 있을까? 본인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삶이 시작되는 것부터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는 정말 운이 좋아서 기대보다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반면에 각고의 노력을 했음에도 운이 나빠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소수의 성공한 자들이 말하는 노력과 그에 따른 실력은 상당부분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나 거기에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조직에 대한 기약 없는 헌신, 그것을 위한 노력과 실력만을 강조하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어디에서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싶다.

‘우리, 자연사하자’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기에 무슨 소리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사람답게 살면서, 오래 오래 살면서 자연사하는 것만큼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이다. 공정과 실력주의가 당연한 게임의 규칙이지만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한 존중과 공감 없는 공정과 실력은 자연사를 어렵게 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남녀노소 누구나 각자만의 어려움과 회한을 갖고 있을 것이다. 2017년에 상영되었던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인생이 후회가 되는 것 천지고 참을성이 없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늘 불안하고 즐겁지가 않다’는 준호의 말에 대한 제희의 대답으로 우리 스스로를 위로해보고자 한다.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해도 되는데 인생까지 후회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어. 누가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 인생의 즐거움은 딴데서 찾는 거야. 예를 들면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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