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선 작가 작품 '가(假)방 NO1', 23.5x25.5x11cm.

 

박종석(52) 미술평론가가 우리 지역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와 그들의 고민을 담은 글을 연재한다.

동양일보는 ‘젊은 예술가의 지금 여기’를 주제로 박 평론가의 글을 매주 금요일 싣는다.

<편집자>


[동양일보]어문선 작가의 작품세계에 문 열고 발 딛는 관람자는 마치 백화점 명품관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그의 전시실에 명품으로 확고히 인식되고 있는 여성용 가방(핸드백)과 여행용 캐리어가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펼쳐진다. 특히 여성 관람자라면 더욱 황홀감을 느낄 것이다.

관람자는 첫인상의 황홀한 감정에 이어 작품 하나하나에 가까이 다가서, 살펴보는 시간의 두께가 묵직해지고 요리조리 살펴보는 눈이 섬세해질수록 당혹감을 감출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전시실의 모든 명품 가방은 전시 제목 그대로 '가짜 가방(假展)'이기 때문이다.

명품 가방은 최고 품질의 가죽 또는 섬유에 정교하게 세공된 금속 또는 나무를 부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진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어문선 작가의 작품 '가(假)방'은 가죽이 아닌 차갑고 단단한 대리석(marble)으로 만들어진다. 작가의 교묘한 의식교란 장치에 의해 관람자의 지각항상성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관람자의 당혹감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조작해 만든 전시 사태(事態)에서 발생하는 이성적 낯섦이다. 작가는 ‘일상에서 이미 알고 있는 사물(오브제, Object)의 특정 재료적 성질과 기능을 없애고 전혀 낯선 재료로 예기치 않은 공간에 살려냈을 때 그것을 대하는 관람자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다’라고 자신의 작업 의도를 말한다.

작가는 관람자가 가지고 있는 어떤 사물의 ‘익숙함에 착각을 일으키고 그것에 대한 관람자의 반응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쾌감’을 느낀다. A라는 형태(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물은 A1의 성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관람자의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인지적 혼란을 준다. 그렇지만 관람자는 작가가 설치한 교묘한 인지교란의 장치 속에서 당혹감, 낯섦, 혼란에 머물지 않고, 대리석을 가죽보다 더 쉽고 섬세하게 다루는 작가의 교묘한 솜씨에 경탄과 경이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더해지면서, 그 위트 넘치는 창조적 상상력에 매료된다. 나아가 관람자는 작가에 의해 허물어진 오브제로서 가방에 대한 자신의 고정관념뿐만 아니라 자신이 지닌 모든 선입견에로 의식적 점검을 확장할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된다. 관람자의 반응, 관람자에게 상상력을 촉발시켰다고 관찰하는 순간 작가는 창작의 쾌감을 느낀다. 물론 관람자 또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고정관념의 경계를 넘어서는 자기 인식의 순간에서 유사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조각 전시를 관람하기 무척 귀한 시대이다. 우리 지역 작가들에게 문턱이 비교적 넓게 열려있는 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의 전시현황을 보더라도, 매해 50회 내외 전시 중에서 조각(개인, 단체) 관련 전시는 5회를 넘기 어려운 것이 최근 현실이다. 조각 예술가 어문선의 생존은 필자뿐만 아니라 청주 미술계에 무척 고마운 일이다. 어문선 작가의 작품전은 놓치고 싶은 않은 전시 중 하나이다.

어문선 작가
어문선 작가

▷어문선 작가는 충북대 미술과(2012)와 동 대학원(2017)을 졸업. 개인전 3회, 아트페어 10여회, 단체전 40여회. 한국구상조각대전 특선(2009), 충청북도 미술대전 입선, 우수상, 특선2회, 특별상 수상(2009~2013)

 

박종석 미술평론가
박종석 미술평론가

△박종석 씨는?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 석사

한국교원대 대학원 미술교육과 박사 수료

전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열린기획 디자인 연구소장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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