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 동화작가

박미애 동화작가

[동양일보] 바퀴는 숙명처럼 다가왔다.

2031년, 태어난 지 7개월이 되자 길도한은 8개의 바퀴가 달린 보행기에 태워졌다. 통통한 종아리를 쭉쭉 뻗어 신나게 보행기 바퀴들을 굴렸다.

“아아. 아브….”

“드르륵. 드르륵.”

그의 옹알이와 바퀴 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웠고 엄마 아빠는 ‘짝짝짝.’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2살이 되자 아빠는 눈부시게 하얀 장난감 자동차를 들고 오셨다. 동그라미를 3개로 나누어 놓은 반짝이는 마크를 입에 넣기 위해 그가 침을 잔뜩 발라놓자 ‘짝짝짝.’ 거실엔 또 박수 소리가 터졌다.

세발 자전거에서 두발 자전거로 옮겼을 때 그는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고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퀴처럼 시간이 빨라진 것이다. 그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와 집을 엄마의 자동차에 태워져 왔다 갔다 했다.

부웅. 학교로 가고.

부웅. 집으로 오고.

길도한이 5학년이 되었을 때

“어어…. 이상한데. 이건 아닌데. 내가 왜 바퀴 위에서만 있어야 하지?”

뭐 그런 생각들이 들었고, 그는 자기의 두 다리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의 두 다리로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바퀴가 굴러다니지 않는 길을 찾았다. 개울가에 난 둑길을 걸었고 작은 동산에 난 오솔길을 걸었다.

그가 걷는 사이 사람들의 바퀴 사랑은 심해져만 갔다. 모두들 자기가 가진 바퀴 위에서 씽씽 달려가다 못해 발바닥에 바퀴를 부착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2070년 7월 한 로켓 회사에선 최고의 모델을 내세워 최신형 로봇 바퀴를 광고했다.

“중력에 끌려 다니지 마세요.

중력을 정복한 당신!

우주시대를 이끄는 최고의 우주시민입니다.”

1분 30초 동안 방송국에서 내보낸 전파는 광고를 시청하는 시민들 앞에 멋진 남자의 홀로그램을 보여 주었다. 홀로그램 모델은 중력을 1.2.3 단계로 맞추어 점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단계만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속도였지만…. 3단계는 발바닥에 장착된 로켓 추진 시스템으로 수백 km를 날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얼리 어답터들은 앞 다투어 매장 앞에 줄을 섰고 이미 발바닥에 로봇 바퀴를 장착한 사람들은 그들이 남들 보다 얼마나 빠르게 세상을 앞서 달릴 수 있는지 자랑하기 바빴다.

그리고 로봇 바퀴 출시 2달 후. 2070년 9월. 그 사고가 난 것이다. 그가 새로 생긴 둘레길을 걷던 중 로봇 바퀴를 장착한 대학생이 조작 미숙으로 그에게 떨어지며 충돌했다. 안전장치로 무장한 로봇 바퀴 청년은 멀쩡했고 약하디 약한 원조 인간 길도한씨는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응급실로 바퀴회사 홍보팀이 찾아왔다. 그들은 길도한씨에게 제안서를 내밀었다.

“당신이 우리 회사의 바퀴를 발바닥에 단다면 큰 홍보가 될거요. 모델비도 넉넉히 줄 계획이오. 어떻소?”

길도한씨는 한참을

‘바퀴냐 발이냐.’

‘속도냐 본질이냐.’

‘성공이냐 행복이냐.’

아주 한참을 고민했다. 마침내 길도한씨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바퀴 말고 다리요.”

그는 비틀비틀 응급실을 나와 바퀴가 다닐 수 없는 작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었다. 바퀴들 때문에 또한 밀려났던 풀들이 그를 맞아 주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