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소현 수필가

남소현 수필가

[동양일보]놋그릇을 닦았다.

아주 오래전 친정 엄마가 쓰시던 것 중에 가져와 베란다 창고에 넣어두고 잊은듯 지났다.

놋그릇은 가져올때부터 쓰지않고 오랜기간 방치했던거라 검푸르고 짙은 얼룩으로 심하게 변해 있었다.

쑤세미에 세제를 묻혀 힘들여 닦아도 쉽게 닦이지 않는다.

엄마의 손때묻은 그릇 닦으며, 대가족 맏며느리였던친정 엄마가 아련히 떠오른다.

엄마의 힘듦이 얼마나 컸을까? 새삼스럽게 느낀다.

엄마는 명절이나 제사때가 돌아오면 놋그릇을 내놓고 종일 닦았다.

짚을 돌돌말아 기왓장 곱게갈아 묻혀 닦았다.

엄마의 힘든 수고로 그릇들은 깨끗하고 노오란 금색으로 반질반질 윤이나게 닦였다.

그릇 빛이나게 닦은날은 밥맛도 더 좋았다.

유익하고 좋은 그릇이지만 무겁고 다루기 힘든 놋그릇 치우고, 스텐레스 그릇과 예쁜 사기그릇으로 바꾸었다.

그릇 한가지 바뀌었다고 맏며느리 엄마의 살림살이는 크게 변함이 없었다.

고된 살림살이에 신경통, 관절통, 달고 사시던 엄마는 밤이면 허리, 어깨 두드리며 잠 못 이루셨다.

엄마가 해주시던 모든것들을 당연하게 받아 누리기만 했던 철부지 지난날이 한없이 죄송스럽고 후회된다.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들 모두 집안일을 많이 도와 주었지만, 살림을 책임지는 맏며느리 엄마는 늘 바빴다.

명절이 되면 어른들 한복도 손수 만드셨다.

앞마당 곳간 지붕위에 하얀 박꽃 피는 저녁, 저녁 이슥하도록 엄마의 다듬이 소리는 빠른 박자로 리듬을 타고 담을 넘었다.

밟고, 두드리고, 재단하여 꼼꼼하게 바느질 하고, 명주옷 저고리에 하얀동정 반듯하게 달아, 놋화롯불에달구어진 반반한 인두질로 깔끔하게 마무리하여 곱게 만드셨다.

반듯하게 개켜놓은 한복 옆에 고단했던 엄마도 잠시 쉬었다.

저녁 산책길 앞동네 골목길을 지나다, 고향집같은 정스런 풍경에 잠시 발길 멈춰진다.

낮은 기와지붕 주택 담벼락에 호박덩쿨 휘감아 뻗어가고, 아침에 피었던 호박꽃은 덩쿨잎속에 잠자듯 숨었다. 밤늦도록 졸음 참으며 장단맞춰 두들기던 엄마의 다듬이소리 그집 담넘어에서 들리는듯하다.

해질녘 고향집 담벼락에 윤기 자르르 흐르던 애호박따다 된장찌게 끓여주던 구수한 엄마의손맛, 가마솥에 밥 지어 커다란 놋양푼에 담고 열무김치와 고추장 넣고, 맛있게 비벼먹던 그때 그맛이 그립다.

닦아놓은 놋그릇에 엄마의 모습이 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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