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종석 미술평론가

익숙한 장소, 가변설치, Steel, 2020

[동양일보]‘선’이 가득하다. 이선구(37) 작가는 허공에 그림을 그리는 설치작업을 한다. 작가의 눈에 공간은 ‘점’으로부터 나온 수많은 ‘선’이 만들어 내는 ‘면’과 ‘그림자’의 움직이는 호흡이다. 그의 ‘선’이 움직인다. 느리게 움직이다 어느 순간 빠르게 이동한다. 때로 맺히고 순간 풀린다. 다시 움직인다. 공간을 그리는 ‘선’은 그의 눈이고 마음이다.

작가는 공간에서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가 느끼는 불안감은 자신의 일상 공간에서 나왔다. 그의 일상 공간은 집과 작업실이다. 작가가 일상 공간에서 불안감을 본 것은 그린 오래되지 않았다. 그의 유년 시절 기억 속에 있는 공간은 지금과 다르다.

‘유년시절 기억에 … 내가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빨간색 벽돌집이다. 그 당시 나에겐 너무 큰집 … 벽돌집 곳곳에 나의 아지트라고 생각되던 많은 공간이 있었다. (건축일을 하신 아버지의) 1층 공장에 있던 계단 아래 사무실, 화장실로 올라가던 계단, 그 계단의 끝에 보이던 비닐 문밖의 풍경 등 어린 나에게는 평온을 제공하는 공간이었다.’ 작가에게 평온과 즐거움을 주던 공간은 어느 순간 불안감을 주는 곳으로 변했다.

2013년 이후 자신의 작업은 그 ‘불안감’을 찾아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좀 더 솔직히 불안감의 시간적 좌표를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결혼과 함께 대학원(석사)에 재학하던 2012년을 전후로 생긴 것 같다고 한다. 온전히 생활을 책임질 수 없었고, 작가로서의 미래도 불투명하다고 느낀 시기였다. 아내가 있는 집으로 들어가도 작업실에 나와도 작가에게 ‘불편함’을 주었다. 어느 공간에 있어도 생활의 압박, 불편함과 답답함이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마치 감옥 같았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에게 불안감을 주는 감옥, 즉 자신의 일상 공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그의 공간을 이루는 수많은 사각틀을 보았다. 꽉 짜인 사각 ‘프레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공간에 관습적 건축언어가 가득 차 있음을 발견했다. 들어가고 나오는 동선이 정해져 있다. 다른 길은 없다. 다른 이가 설계한 공간에서 정해진 언어관습을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한다. 그것이 불안감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집, 작업실, 심지어 버스 안도 모든 공간에는 정해진 동선 있고, 세부 공간에도 선 규정된 성질(개념)이 있어 사람은 행동에 제한을 받는다. 작가가 공간연구를 통해 본 것은 관습(선입견, 고정관념)으로 가득 찬 건축구조이다. 작가는 건축 공간에서 인간에게 정해진 행동을 강요하는 수많은 억압을 보았다. 이것은 공간연구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억압에 갇힌 일상 삶의 은유이다.

작가 자신의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느꼈던,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적 정서적 반응으로부터 나왔던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계기에서 출발하여, 지금 그는 공간을 해체하고 공간의 감추어진 다양한 모습을 재구성함으로써 창작의 보편적 과제로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행위의 자유를 모색하고자 길을 내고 있다. 그의 작품을 닫힌 공간의 알레고리라 읽어도 좋을 듯하다.

이선구 작가
이선구 작가

이선구 작가는...

충북대 미술과(조소전공, 2010), 홍익대 일반대학원 조소과(2013) 졸업. 현재 홍익대 미술학과 박사과정, 개인전 4회, 단체전 25회. 양구군청 등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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