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미영 수필가

민미영 수필가

[동양일보]35살의 젊은 청년이 결장암으로 입원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하게 아팠다. 청년의 엄마는 옆에서 담담하게 말했지만, 어느 순간 울컥하며 울음을 토해냈다. 울음을 토해내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픈 아들의 속상한 마음이 느껴져 엄마를 사회복지실로 모셨다.

당신이 딸만 있는 집에서 자랐기에 아들을 낳고 얼마나 기뻤던지 친정에 아들을 업고 자랑하듯 다녀온 일부터 속 한번 안 썩히고 잘 자라준 아들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처음엔 속상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눈물부터 쏟아져 내렸다고 한다. 약 40여분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손을 잡아줬다. 어떤 위로를 한들 그분의 아픈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까? 답답하고 힘들 때 그리고 참을 수 없을 만큼 슬플 때 오셔서 실컷 울고 가라고 말씀드렸다.

암 말기라 청년은 무척이나 말랐다. 사슴처럼 맑은 큰 눈으로 조용히 바라본다. 뭘 도와드릴까요? 불편한 건 없나요. 라고 말을 건네면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한다. 편하게 쉬는 걸 방해하는 것 같아 자주 들어오는 걸 조심하겠다고 말하면서 그래도 1-2일에 한번씩은 오겠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들어가보면 성경책을 읽거나 조용히 쳐다만 봤다. 맑고 깨끗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선한 그 눈빛에 내 마음은 몹시도 아팠다.

먹으면 토하고 통증 때문에 몸을 뒤척이곤 했으나, 통증 치료가 진행되면서 그런 증상은 점점 없어졌다. 그동안 몸 생각해서 먹지 못했던 과자와 음료가 먹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부모님이 잔뜩 사다 주기도 했다. 천국 가기 전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가라는 엄마를 아들은 표정 없이 쳐다만 봤다. 죽음을 당연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시는 엄마 모습을 이해하긴 힘들었지만, 그 아들의 죽음을 가장 슬퍼할 사람이 엄마라고 생각하면 그건 엄마의 깊은 마음을 모르는 나의 교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임종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가끔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병원에 방문하시는 목사님을 모시고 가서 임종 기도를 드렸다. 퇴근하기 전에도 한 번 더 찾아보고 조용히 손을 잡고 기도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그를 기억하시고 축복하시기를….

다음 날 아침 6시 정도에 청년은 임종했다. 병원 산하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가니 맨 먼저 눈에 띄는 게 사진이었다. 입사해서 찍은 사진이라고 하니 7~8년 전의 모습인 듯했다. 그 모습은 더 순수하며 맑고 깨끗했다. 저렇게 젊은 사람을 하나님은 왜 데려가야 하는지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상주인 부모님은 더 고생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갔다며 오히려 담담했다. 아마 그분들이 눈물을 보였다면 나 또한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 담담한 모습에 나도 담담하게 조문을 하고, 위로와 격려를 한 후 조문을 마쳤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울 수 있다. 죽음을 받아들였다고는 해도 며칠만 아프지 않아도 작은 기적이 내게 오질 않을까 하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그 희망을 움켜쥐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양면성을 갖기도 한다. 늘 흔들리면서 살아가고 가끔은 지치고 힘들지만 지금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알아차리면 모든 게 다 감사할 뿐이다. 선물처럼 주어진 오늘 하루. 불평보다는 감사로 채우는 삶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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