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석 미술평론가

잡초들, 116.7x80.3cm, 캔버스 위에 유채, 2021

[동양일보]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너무 많다.’ 대개 사람들은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잠시의 일탈을 생각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스마트폰 위에 펼쳐진 검지손가락 눈요기 여행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올린 것이다. 보고 또 보다보면 처음의 신선함은 어느새 사라진다. 작가의 눈에 천편일률적인 틀이 보인다. 풍경을 둘러싼 일정한 프레임을 보게 된다. 여행의 감정도 느낌도 반복되는 틀 안에서 서서히 식는다. 김라연(33) 작가는 시각적 반복과 호기심의 사그러짐에 물음이 생겼다. 그 물음을 그림에서 풀고자 했다.

제 돈과 시간으로 작가의 본격적 발품 여행은 서른 직전이다. 많은 사람이 가서 보았던 익숙한 풍경에 다른 이의 시각이 아닌 그녀 자신의 색깔을 넣었다. 다른 이의 느낌과 해석으로부터 떨어져 낯설게 하는 방법으로 그녀만의 색을 통해 풍경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풍경의 속살을 생각하고 찾아 그림에 담았다.

나무의 기운을 받는 사람(Tree Man), 캔버스 위에 유채, 45.5x60.6cm, 2018
나무의 기운을 받는 사람(Tree Man), 캔버스 위에 유채, 45.5x60.6cm, 2018

 

첫 개인전 ‘다시, 풍경(숲속갤러리, 2018)’은 저 멀리 있던 풍경에 직접 다가서 자신만의 느낌과 해석을 담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행위 자체가 나의 인간관계와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껴지는 일상 속에서 다시 느리게 음미할 수 있는 시각적인 담담한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고민이었다. 첫 개인전은 익숙한 풍경의 새로운 해석자로서 그리고 메시지 전달자로서 작가 자신에게 뿌듯함을 주는 순간인 동시에 새로운 물음이 생겼다고 한다. 전시장 한 가운데서 ‘나는 작가로서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을까?’

혼자, 캔버스 위에 유채, 112.1x145.5cm, 2019
혼자, 캔버스 위에 유채, 112.1x145.5cm, 2019

 

이듬해 두 번째 개인전 ‘자연풍경(CGJ갤러리청주, 2019)’은 사람과 풍경이 있는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다양하고 예쁜 색깔의 풍경과 맛있는 음식으로 좋은 기억을 만들었지만, 즐거운 여행의 이면에 붙어있는 불안, 서른 살 목넘이 여행에서 돌아본 자신의 내면 풍경이다. 더욱 짙어지고 무거워진 보라색은 그녀 내면에 물든 마음의 색으로 보인다. 서른 살 목넘이 아픔이 강하게 느껴진다.

여행의 단계가 흥미롭다. 시선이 먼 풍경에서 점차 내부로 향했다. 작가는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상황을 돌아보기 위한 시간을 더 모으고 집중하고 있다. ‘삶의 불안감이 엄습해 오면 그림에 대해 다시 보게 되고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보게 된다. 세상과 자신을 다시 보게 되니 그림도 바뀌게 된다.’고 말한다.

다음 전시에 관해 물었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묻고 있다고 한다. ‘불확실한 미래, 나는 언제 작업을 그만두게 될까?’ 하는 고민을 덤덤하게 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길을 걸을 때면 바닥을 무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한다. ‘마음이 복잡할 때 길을 걸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데, 그 시선이 길 가장자리 바닥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하게 자라는 풀, 잡초에 시선’이 머물러있다고 한다.

노방 한 켠에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 홀로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는 잡초를 다음 전시에 담을 것이라 한다. 삶의 동선에서 늘 거기 있는 것, 그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 사소한 것에 대한 관심이다. 그녀는 말한다. ‘내가 작게 느껴졌을 때 잡초가 눈에 왔다.’
 

김라연 작가
김라연 작가

▷김라연 작가는...
충북대 미술학과(서양화전공, 2013) 졸업. 현재 동 대학원 석사과정, 개인전 2회, 단체전 15회. 충청북도청 등 작품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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