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이상준 지명연구가(전 음성교육장)

 

[동양일보]10월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을 기념하는 한글날이 있는 달로서 한글 반포 575돌을 맞는다. 한글날은 1926년 11월 조선어연구회를 주축으로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기념한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고, 1945년부터는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 말문에 적힌 ‘정통(正統) 11년 9월 상한(上澣)’에 근거하여 이 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다. 2005년에 국경일로 승격되었고, 2013년부터 공휴일로 지켜지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대체공휴일 적용 대상이 되었다.

한글 창제를 시도하던 시기는 최만리 등이 상소를 통해 훈민정음의 창제는 중화주의에 어긋난다고 했을 정도로 모든 문화를 중국에 의지하고 스스로 '작은 중국'임을 자랑으로 삼던 시대였기에 집현전 학자 대부분은 물론 나라의 바탕인 사대부들이 거의 새로운 글자 창제를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나라를 세운 지 50여 년밖에 되지 않아 명나라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여건이었다. 세종대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비밀리에 추진할 수밖에 없었으며 '백성에게 한자의 올바른 음을 가르치기 위하여 글자(훈민정음)를 만든다'는 논리로 중국의 간섭을 벗어났다. 지금도 일부 학자들은 한글의 창제가 중국의 한자를 표기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여 민족주의 정신을 폄하하기도 하지만 이는 약소국으로서 대국인 중국의 반대를 막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한글의 창제에 왕자와 공주들만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가족 외에는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았고 절대 군주가 직접 창제했다는 것이며, 세종은 이러한 학문적 소양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가림토 글자 표절설이나 신미대사 창제설, 일본의 신대문자 모방설 등은 절대 군주의 직접 창제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억측에 불과한 것이다. 세종이 그 격렬한 반대 세력들 속에서 어쩌면 무모할 수도 있는 훈민정음 창제를 시도한 이유는 바로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 있었던 것이다. 완벽한 문자로 다듬기 위하여 성삼문 같은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을 요동에 있던 중국의 학자 황찬에게 10여 차례 찾아가 배우게 함으로써 한글은 오늘날의 음성학, 음운학, 문자학에 뒤지지 않는 언어학적 바탕 위에 독창적이고도 과학적인 글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세계 언어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글을 최고의 글자라고 말한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미국의 언어학자 제임스 매콜리(별명 막걸리) 교수는 한글날만 되면 언어학자로서 최고의 글자를 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친구, 친지, 제자들을 불러 잔치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 왜 한글이 이렇게 최고의 글자로 대접받는 것일까?

먼저 한글의 특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적이며 철학이 담긴 글자라는 것이다. 한글 닿소리(자음)는 소리를 낼 때 발음기관의 생긴 모양을 본떴으니 과학적이요, 홀소리(모음)는 하늘(·)과 땅(ㅡ)과 사람(ㅣ)이 담겨 있기에 철학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한글은 배우기 쉬운 글자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있는 정인지의 꼬리글에는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우칠 것이요,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이다. 한글 우수성 중에서 가장 으뜸은 뭐니뭐니 해도 소리 표기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바람 소리, 학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무엇이든지 소리 나는 대로 글자로 쓸 수 있다’고 했으며 글자 총수는 무려 1만 1,172자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글자이다.

한글날에 즈음하여 빛나는 문화 유산인 한글을 우리 모두가 아끼고 다듬어 더욱 우수한 한글로 만들어나가도록 노력하는 한편 한글날을 온 나라가 기리고 기뻐해야 할 문화축제일로 삼아 한글의 우수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되살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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