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동양일보]얼마 전 문우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수필집을 펴낸 노고를 치하하고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다. 내가 행사 총괄과 사회를 맡았다.

출간기념회에는 많은 문우의 도움이 필요했다. 내빈 안내와 열 체크하기, 출입자 명부 작성하기와 방명록 관리하기, 사진 촬영하기 및 축가 부르기와 작품 낭독하기, 답례품 드리기 등이다. 소위 행사 진행을 위한 스태프staff이다.

문득 ‘스태프’가 우리말 9 품사 중의 하나인 부사副詞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사는 동작이나 상태를 한정하는 일이 제 업무이다. 홀로는 아무 역할을 못 한다. 문장에서 필수 성분도 아니다. 그렇지만 사물의 모양 앞에 있어 상태를 빛나게 하고 애매하던 상황이 똑 부러지게 명확해진다.

부사가 아무리 애써도 도움을 주는 품사이고 으뜸이 못 되듯 스태프가 아무리 고생해도 스포트라이트는 주인공만 받는 세상이다. 드라마나 영화도 배우만 주목을 받는다. 배우의 의상을 챙겨 주는 스타일리스트나, 인물을 꾸며주는 분장사나 이동을 돕는 매니저는 그들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연기자를 빛나게 하려고 온 힘을 기울인다. 더욱이 연기자가 빛나야 스태프도 힘이 나고 그들의 몸값도 따라 올라간다. 분명한 것은 보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 바로 스태프다.

세상에는 스태프와 부사처럼 사는 사람이 많다. 축구 선수 중에 도움 골을 주는 선수가 그럴 터이고. 야구장에 치어리더도, 가수 뒤편에 있는 코러스, 악단, 백댄서가 그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세간에 부사 같은 사람이 많다면 사려 깊고 따뜻한 세상이 되지 싶다. 그래도 낄 데 빠질 데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참견하는 건 퇴출 1호 대상일 터이니 이 또한 조심해야 할 일이다.

난 문우의 출판기념회에서 부사였다. 주인공이 빛나도록 기획하고 연출하는 역할이다. 행사를 도운 회원 모두 부사다. 이번 행사도 부사들이 적재적소에서 역량을 십분 발휘해 깔끔하고 매끄럽게 잘 마쳤다. 부사들의 힘이 막강했다.

행사 중에 사진 한 장 남겨지지 않았지만, 서운할 일도 속상할 일도 아니다. 나의 역할이 본디 ‘스태프’이며 부사였으니 당연한 것이 아닌가. 갑자기 사진을 찍는 문우가 정작 본인은 늘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게다가 다른 부사들이 일을 다 마친 뒤에 사진 ‘셀렉select’ 작업을 해야 하는 그는 부사 뒤에 있는 부사였다. 잠사라도 촬영을 담당한 문우에게 섭섭해한 것을 생각하니 겸연쩍었다.

우리말의 말글 중에 부사는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3%는 되려나. ‘소금 3%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한다.’ 부사가 소금 3% 역할처럼 문장이 활력 넘치고 뜻을 분명하게 하여 내 글의 품격이 한껏 올라갈 수 있으면 좋겠다. 아울러 음식에 양념과 약방에 감초 같은 사람 3%가 세상을 맛깔나고 윤택한 사회로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우의 출판기념회에서 내가 잘 차려입고 곱게 화장한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주제넘게 주인공 행세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삶의 자리도 부사인데 동사나 형용사 자리를 넘보다가 일을 그르치지나 않았는지 자성해 볼 일이다. 하지만 가끔 힐끗거릴지언정 각박한 세상에 으뜸 아닌 버금으로 누군가를 꾸며주고 돕는 부사로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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