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환 수필가

오영환 수필가

[동양일보]해마다 추석날이 다가오면 한국 씨름협회에서는 전국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연다. 내놓으라 하는 선수들이 자기 고장의 이름과 개인의 명예를 걸고 마음껏 기량을 펼친다. 최종 우승자에게는 금으로 만든 송아지 형상의 트로피가 주어지며 가마를 타고 관중이 뿌려주는 오색찬란한 꽃가루를 맞으며 우승의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이처럼 금송아지 형상의 트로피는 모든 씨름 선수가 부러워하고 또 받고 싶어 하는 상이다.  

언제였던가? 퇴직한 지인 몇 분과 청주 상당산성을 찾았다. 가을철의 단풍잎은 노랗고 빠알간 색으로 곱게 물들어가고 바람결에 한잎 두잎 떨어진다. 다람쥐는 배가 고픈지 두 귀를 쫑긋이 세우고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두리번거린다.

참나무 도토리를 찾는 모양이다. 주머니에서 튀밥을 한 움큼 꺼내 던져주니 다가올 듯하다가는 멀리 도망을 간다. 아마 내가 못 미 더운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등산로의 낙엽을 밟을 적마다 내 황혼의 길을 걷는 것 같아 마음이 휑해진다. 떨어지는 낙엽처럼 살날이 짧아진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젊은 시절, 동네 길목에 있는 노오란 은행잎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을 때, 어린 딸이 은행잎 위를 걷다가 발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울음을 터뜨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이 엄마가 되었으니 빠른 세월이 참 아쉽기만 하다.

문득 차중락 씨가 부른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노랫말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낙엽이 지면 꿈도 따라가는 줄 왜 몰랐던가”라는 말이다. 낙엽도 사랑의 정(情)도 세월이 흐르면 잊혀진다. 는 뜻으로 비유한 것 같다. 노래를 들을수록 정감이 다가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상의 너럭바위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선배님 한 분이 옛이야기를 구수하게 하신다. 그러더니. “그 사람은 옛날에 내가 데리고 있던 사람 이야” “내가 장(長) 할 때 내 밑에서 무얼 했던 사람이지” 하고 자랑삼아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옛날, 자기 집에 금송아지가 있었다는 생각으로 젖어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집착하고 자신만이 가장 우월하다는 생각이 가득 찬 사람이다. 은근히 의기소침해지고 씁쓸한 생각이 나의 귓전을 맴돈다.

누구나 현직에 있을 때는 그 조직을 경영하기 위해 상하관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일단 정년을 하고 나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없으며 오직 다 같은 청주시민이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다만 퇴직 후에는 건강이 첫째이고 둘째는 기본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적 여력만 있으면 이 세상 부러울 게 없고 행복해진다.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욕심도, 권위도, 명예도 이제 다 떠나가고 남는 것이라곤 오직 빈손뿐이다.

이처럼 옛날의 금송아지 생각은 허상이요 무용지물이다. 그 생각에서 하루속히 벗어나야 좋은 친구도 만날 수 있고,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 주변에는 아름다운 이웃도 있고 정 情을 함께 나누고자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불청객인 “금송아지 생각”을 여름 장맛비에 훌훌 떠내려 보내고 순수한 자연인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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