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경 수필가

우승경 수필가

[동양일보]1학년 신입생은 도서관에 오는 것이 신기한 듯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간다. 자신의 사진과 이름이 적힌 대출증이 찍힐 때마다 삑삑 소리를 따라하기도 하고, 책 빌려주는 값이 얼마인지 묻기도 한다. 무슨 책을 고를지 모르겠다며 도서관을 빙빙 돌다가 다시 와서 골라달라고 하는 아이도 있다. 책 고르는 것도 책꽂이에 손닿는 것도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그렇게 책과 함께 커서 고학년이 되면 어린 모습은 완전히 벗고 의젓한 형과 누나가 된다. 재미있게 읽은 작가의 책을 권하기도 하고, 신간 도서가 언제 들어오는지 묻기도 하며, 무슨 책을 읽고 싶으니 꼭 비치해달라는 주문서를 주고 간다. 현재는 미래가 되고 과거가 되어 6년이란 시간 동안 깊어지고 단단해져 다음 단계를 이어갈 준비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 도서관은 학교에서 중요한 곳이고 그 역할의 중심에 도서관이 있다고 본다.

내가 사서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도서관에 근무하면 책은 실컷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였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이곳 직원이 되면 조용하고 여유 있게 다양한 독서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도서관에 근무하게 되면서 보니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겉에서 보는 것과 직업으로 대할 때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현장은 완전히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서는 책을 읽기보다 책을 만지는 직업이라는 현실을 실감했다. 특히 초등학교 도서관 특성상 시시각각 아이들이 드나들고 도서관과 관련하여 업무량은 끝이 없었다. 나만의 조용한 독서 시간은 전혀 나지 않았고 종일 동동거렸다. 도서관 문을 열면서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전교생 대부분을 만나는 것 같았다. 불평으로 내 얼굴은 변하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자주 냈다. 나를 대하는 상대방은 더 미리 알아차리고 눈치를 봤다. 나를 위한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불만이 커지고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다.

생각을 바꾸기로 하고 출근하기 전에 거울을 봤다. 웃는 연습과 함께 아이들에게 친절한 모습과 다정한 말을 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였다. 도서관에서 여는 문화행사도 아이들 모두 참여할 수 있고 만족할 수 있게 하려고 준비했다. 내가 변하자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묻지 않는 말도 들려주고 경직되지 않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과 찾아오는 횟수도 점점 늘어나 도서관은 늘 활기찼다. 하루하루 한 명 한 명 도서관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예쁘고 소중했다.

6년이라는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좋은 책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고, 공문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동아리 활동도 중요하고, 문화행사도 중요하고, 환경정리와 청소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사실 중요한 일과 꼭 해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렇지만 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도서관은 무엇보다 자주 오고 싶은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꾸준히 도서관을 좋아하게 될까,하는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이들은 내가 보내는 마음과 눈빛을 책을 읽듯 잘도 읽어낸다. 내가 건네는 미소, 말 한마디 한마디와 행동은 도서관과 친해지게도 하고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도서관과 관련된 명언은 많지만 빌 게이츠의 ‘나를 키운 건 8할이 동네 도서관이었다’라는 말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이 커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학교도서관이었다’라는 말을 꿈꿔본다. 아이들이 도서관과 함께하며 책을 통해 저마다의 향기를 지닌 꽃을 탐스럽게 피워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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