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석 미술평론가

엄마의 기도, 장지에 채색, 162×118×5cm, 2021
아침이 온다, 장지에 채색, 118×162×5cm, 2021

 

[동양일보]“고통을 놓아주던 어느 날, 나의 물음은 새로 시작되었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괜찮아!’ 이승미(31) 작가는 지난 6월 자신의 개인전 메세지를 이렇게 짧은 말로 요약한다. 이어 작가가 20대 후반 자신이 겪은 사랑의 슬픔과 아픔을 넘어, 개인전을 통해 훌훌 털어버린 지금의 자신을 보여주고자 두 가지를 인용을 한다.

먼저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2017년)’ 마지막 구절,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그리고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게츠비’ 마지막 문장, ‘우리는 과거로 끊임없이 되돌리려는 물살을 거슬러 쉬지 않고 노를 젓는다.’


작가는 단호하고 강단있는 성격을 드러내며 말한다.

"누구나 삶에서 어떤 아픔이든 기쁨이든 겪어요. 과거는 과거일뿐 마음으로 정리하고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 해요. 특히 부정적인 과거는 힘이 쎄서 제게 유령처럼 찾아와요. 나는 과거의 유령이라고 해요."

그녀가 지난 여름 개인전 표제로 ‘아침이 온다’라고 한 것은 바로 그 유령의 시간이 지나고 아침이 왔음을 말한다. 슬픔에 잠겨있던 새는 스스로 굴레를 끊고 그렇게 아침 햇살을 타고 자유롭게 날아 오른다.

과거의 유령을 털어냈다면, 지난 개인전 주제를 더 이상 다루지 않겠다는 말인가. 정말 해소된 것인가. ‘예. 앞으로 다루지 않을 거예요.’ 단호하다. 그녀에게 그림은 자기 정화의 시간인듯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때로 참담하고 참혹한 아픔을 겪는다. 애초의 기대와 달리 가슴이 무너질 때가 있다. 무엇에 위로 받을 수 있을까. 그때 어떻게 자신을 추스를 수 있을까.

작가에게 말한다. ‘고통을 놓아주던 날, 나의 물음은 시작되었어요. 나의 슬픔과 고통을 되짚어 들여다보는데, 어느 날 나를 향해 무한히 헌신하고, 기다리고, 미소 짓고 있는 엄마의 사랑이 보였어요. 그래서 알았죠. 이제 내 작업의 핵심은 사랑이다.’ 그렇게 다음 전시의 물음은 ‘엄마의 사랑, 모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는 사랑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혹자는 에로스(Eros, 육체적 충동적 성애), 스토르게(Storge, 부모자식 간의 혈족애), 필리아(Philia, 우애 또는 형제애), 아가페(인간을 향한 신의 절대적 사랑) 4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혹자는 여기 더해, 프라그마(Pragma, 남녀간 오랜시간 발전되고 성숙한 사랑), 루두스(Ludus, 젊은 연인 간의 들뜬 사랑), 마니아(Mania, 일방적 광적 집착의 사랑), 필라우티아(Philautia, 이기적 나르시스적 자기애) 8가지 유형으로 보기도 한다.

한자문화권에서 보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자(慈),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은 효(孝), 형제간의 사랑은 우애(友), 남녀 간의 사랑은 연모(戀慕), 사모(思慕) 등으로 쓴다. 더불어 불교에서 부모, 특히 어머니의 무한하고 헌신적 사랑을 이야기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 있다.

작가는 자신의 향후 장기적 회화창작의 물음으로 사랑을 핵심에 두었다고 하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녀가 새롭게 해석해낼 사랑의 유형을 기대해 본다.

이승미 작가
이승미 작가

 

▷이승미 작가는...

서원대학교 미술학과(한국화전공, 2015) 졸업. 개인전 1회, 단체전 10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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