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현숙 시인

홍현숙 시인

[동양일보]약속한 시간에 맞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백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자그마한 게 무척 앙증스럽고 흔하지 않아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값을 치르고 그 백을 샀을 땐 백에도 이름이 있는지 몰랐다. 부드러운 양가죽이었는데 가격이 좀 비싸다. 나는 디자인에 약한 편이다. 그저 고것이 눈에 들어왔을 뿐, 덥석 계산을 치르고 들고 나와 방에 던져 놓은 며칠 뒤, 고 작은 이름이 만두백이란 걸 알았다.

크고 작은 가방들이 무수히 즐비한데 하필이면 요즘 작은 것들에 이상하게 꽂힌다. 내겐 같은 종류를 몇 개씩 사들이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다. 영 고쳐지지 않는데 아마 마음 한구석이 어딘가 허전한 탓이리라. 물건으로 채우고 싶은 이유일까, 돈을 쓰면 채워질까, 이런 마음은 도대체 무얼까. 혼자 물음을 가져본다.

몇 개를 사들이고 어느 날, 어느 옷을 입을 때 저걸 하나씩 적재적소에 들고나갈까 생각한다. 건넌방에서 줌으로 수업하고 잠시 쉬고 있는 작은딸을 불러 구경시키고 얼마냔 물음에 가지라고 널름 던져주고, 화장대에 앉아 꼼꼼하게 화장 지우는 큰딸 구경하라 불러놓고 어디 거냔 말에 옛다 가져가라 또 널름 던져주고, 이제 남은 하나를 외출하려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다 집어 든다. 핸드폰 욱여넣으니 그마저 간신히 꿰어 맞춰야 하는 혼자만의 게임 같기도 하다.

예쁘기만 하지 도대체 자동차 키 넣고 핸드폰 하나 간신히 들어갈까 말까 하는 코딱지만 한 그것도 지금, 이 순간을 유행하는 백이란다. 카드 한 장을 꽉 찬 만두 속 채우듯 욱여넣는다.

액세서리와 옷도 그렇지만 애니메이션 창작동화 인디 음악의 작사 작곡까지 무궁무진한 그들의 다양한 창작성을 무척 존경한다.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내듯 상대방의 묘한 오기까지 충돌시키는 예술인의 실험적 도전을 극찬하고 부럽기까지 하다. 끝없이 지치지 않고 끌어내는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어디서 샘솟는 걸까.

이번 기회에 커다란 가방을 그득하게 채우는 습관을 고쳐보기로 했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보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겠다. 몇 장의 카드와 현금을 줄이고 장보기를 줄이고 미움과 질투를 줄이는 일.

누군가는 가진 물건을 하루에 하나씩 비우기로 결심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집으로 내 방으로 들여왔을 땐 그만큼 소중한 이유와 사연들이 각각 있었으리라. 그것들을 들었다 놓았다 몇 번을 고민하고 내게서 비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

책 한 권 정도의 그 백에는 과욕과 허영을 담을 수 없어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오만함에서 편견에서 질투에서 나를 덜어내어 볼 기회를 이렇게 만들어 보게 되어 또 다행이다. 작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했을 고 작은 만두백이 무거운 자만심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내게 선택의 여지를 내어주지 않는다.

햇빛이 이제 한쪽의 그늘을 만들어가는 시간이다. 따끈따끈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가 먹고 싶은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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