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환 수필가

양미환 수필가

[동양일보]내가 속한 문학회에서 전철을 타고 고종과 민비의 능이 있는 홍유릉으로 봄맞이 문학기행을 갔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전철을 탈 수 있는 기회를 그리 많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주 가끔 타게 된 전철에서도 밖에 풍경만 무심히 보고 갔던 것 같다. 이번 홍유릉을 가는 전철 안에서 전철 손잡이가 일정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하나는 길고 하나는 짧게 일정한 간격으로 매달려 있었고 줄 맞춰 리듬을 타며 흔들거렸다. 마치 아이돌 가수의 댄스처럼, 군인들의 군가를 부르며 하는 행진처럼 일정하게 리듬을 탔다. 어느새 전철 안에서 홍유릉이 있는 금곡역 도착 안내 방송이 흘렀다.

나는 키가 아주 작다. 내가 작다는 것은 키가 큰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모든 사람의 키가 나와 같다면 내 키가 작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또 내 키가 크고 모든 사람의 키가 내 키와 같이 일률적이라면 크고 작음의 차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똑 같을 수가 없다. 각각의 다른 모습과 각자의 색깔로 삶을 살아간다. 전철 손잡이가 일정한 길이로 달려 있었다면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치밀하게 과학적인 계산으로 한국인의 평균치에 의해 설치되었다 해도 어디까지나 평균일 뿐이다. 평균 이상과 이하가 존재하기에 평균치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전철 손잡이가 길고 짧게 매달려 흔들리는 것을 보며 날로 지혜를 더하는 인간의 생각이 기뻤다.

때로 자신의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면 말을 섞고 싶지 않다. 얼마든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아집은 상대를 질리게 한다. 모두의 생각이 같다면 세상은 단조로울 것이며 삶은 지루할 것이다. 똑같은 키를 가진 사람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줄맞춰 나란히 똑같은 길이의 전철 손잡이를 잡고 서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계적인 느낌이 들어 재미없다. 크고 작고, 마르고 뚱뚱하고, 남자 여자, 늙고 젊고, 갖고 못 갖고 각자의 분량을 잘 소화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답다.

얼마든지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 내 생각에 타인의 생각을 강요하는 억지처럼 안쓰러운 것도 없다. 본인도 상대도 다 힘든 감정싸움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젊음이 미완성이 아니므로 늙음도 완성이 아님을 이해해야 마찰 없이 공존할 수 있다. 가난이 무능이 아니므로 부유가 능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할 때 가난이 죄가 되지 않는다. 남자, 여자 편 갈라 대립하는 싸움보다 각자의 타고난 고유성을 이해할 때 동행이 행복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환자를 이해하고,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권력은 겸손해지고, 늙음이 권위를 버린 자리를 젊음이 존경으로 채우며 화합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각각의 개성과 색깔을 존중할 때 우리가 세상이라는 캔버스에 그릴 소재가 무한해 진다. 내 생각만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버릴 때 외롭지 않다. 그럴 수도 있다는 열린 사고는 타협과 평화의 시작이다. 작을 수도, 클 수도 있다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길고 짧은 전철 손잡이를 생각하게 했다. 같은 길이의 손잡이를 만들어 놓고 억지로 잡으라고 강요하는 강압보다 민주적이고 열린 시선으로 인간을 볼 줄 아는 승화된 따듯함이 기쁘다. 길고 짧은 전철 손잡이가 어울려 리듬에 맞춰 함께 춤을 춘다. 길게 매달린 전철 손잡이가 나만을 위한 것처럼 특별하다.

작은 사람도 큰사람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전철 손잡이처럼 나도, 타인도 행복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었으면 좋겠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