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동양일보]대선을 겨냥하여 여가부 폐지공약이 나왔다. 선거공약을 비판하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흠집내려는 것이고, 나아가 경쟁자를 편드는 것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질 염려가 있지만, 이것이 억울해도, 명색이 성평등정책 연구기관의 대표로서 이에 대해 한 마디 의견을 밝히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 여긴다.

우선 현재 제안된 여가부 폐지공약은 매우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폐지하겠다는 것이 성평등정책인지 여가부 부처인지 불분명하다. 또 폐지이유가 우리 사회가 성평등을 달성했기 때문이지, 아니면 여가부가 잘못 했기 때문인지도 혼돈스럽다. 전자라면 논리상 폐지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후자라면 부처를 없애야 하는 이유는 아니다. 요컨대, 현재의 여가부 폐지공약은 무엇을, 왜 폐지한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여가부를 폐지한다면서 그 기능은 여러 부처로 이관한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은 여가부 폐지론이 아니라 조직개편론이다. 조직개편론은 성평등정책 업무가 하나의 부처에 있을 때의 불합리나 행정 전달체계상의 한계를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나아가 조직체계에 대한 더 나은 대안을 폭넓은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그 의미는 불분명한 채로 자극적인 어귀로만 던져졌다. 공약 발표 후 보름을 넘기고도 대안설명이 없으니 성급하게 던져진 공약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치가들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면서 여가부의 정책실패나 장차관의 잘못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곧 부처폐지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인터넷에 여가부 폐지론을 지지하는 댓글들에는 미투 운동이나 여성운동에 대한 불만, 페미니즘 일각의 주장들에 대한 불만들이 섞여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감정적 대응과 논리가 구분되지 않는다.

여가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주장들은 상충하기도 한다. 한 쪽에서는 여가부가 충분히 여성을 보호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여성만을 위한 정책을 하기 때문에 잘못이라고도 한다. 전자가 이유라면, 부처 폐지가 아니라 강화가 답이다. 후자가 이유라면, 이런 주장은 성평등정책을 ‘여성만을 위한’ 정책으로 오해한 결과다. 성평등정책은 성평등가치를 위한 정책이기 때문에 수혜대상에 남성도 포함된다. 동시에 성평등을 위해 여성에게 고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기에 여성지원 정책들도 여전히 필요하다. 경력단절여성 일자리지원 정책이나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위한 정책들이 이러한 예다. 여가부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이들 정책들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인지, 성평등 관점이 없이도 이런 정책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시행될 수 있다는 것인지 대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위공직자 성위비 사건 예방교육 등을 성평등정책 총괄단위 없이 교육부나 행안부가 잘 할 것이라면, 여태는 왜 잘 안 되고 있는가? 여가부가 있어도 타부서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 성평등 정책의 현실임을 간과하지 말자.

사실상 여가부폐지론을 강하게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사실상 성평등정책 폐지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한국사회에 성차별은 더 이상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한국 사회의 학계와 세계 기구들의 미래 전망에서는 성평등의 가치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도 여전히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주장된다. 어떤 지표로도 한국에 성차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인되지 않는데, 한국 사회는 성평등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서 홀로 뒷걸음치려나 보다. 20대 일부 남성들의 혼란스런 주장에 의지한 공약이 진짜 선거에서 다수 유권자의 표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지... 지금의 대선전을 보고 있자니 이판사판의 투기판을 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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