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모 문학박사

강찬모 문학박사·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강찬모 문학박사·진천 포석조명희문학관

 

어제(10일) 진천에서 '29회 포석 조명희문학제'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문학제는 오전에 1부 추모제와 오후 2부 문학제로 나누어 진행됐다. 문학제의 큰 틀 속에 추모제가 있다.

그동안 문학제는 선생의 기일에 맞추어 개최됐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가을로 축소 순연되어 열렸었다. 올해에는 다행히 일상이 회복되어 감에 따라 문학제가 3년 만에 본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실로 오랜만에 만끽하는 문학의 향연이었다. 추모와 문학제가 어우러지며 펼쳐지는 두 행사는 5월이 선사하는 '꽃'과 '녹음'의 풍경처럼 한 인간을 위한 슬픔의 ‘념(念)’과 기리는 ‘축제’의 ‘흠모의 날’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여운을 남겼다. 포석이 운명한 84년(1938) 전의 동토의 땅 5월도 그 달 만큼은 이렇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러나 참담한 비극을 딛고 슬픔 위에 수놓은 그의 문학정신으로 인하여 5월은 끝내 포석의 계절이 됐다.

이번 문학제는 ‘추모곡’과 ‘낭독극’이 추가됨으로써 예년과 다르게 진행됐다. 과거에 추모곡은 추모제 특유의 엄숙성 탓으로 노래에 대한 편견이 있었으나 이를 불식하고 싶었다. 노래만큼 상황을 핍진(逼眞)하게 드러내고 마음을 공명(共鳴)케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각이 처음부터 구체화 된 것은 아니었다. 동료인 정민 작가와 소통하던 중 산오락회라는 음악 단체로 활동하는 작곡가 겸 연주가 김강곤 씨를 소개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김강곤 씨는 동학과 항일가요, 디아스포라 동포의 노래와 산사람의 노래를 찾아 채록하며 순례하는 ‘가객(歌客)’이다. 가객처럼 김강곤 씨를 적확하게 규정하는 말도 없을 듯하다. 그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며 완치되지 못한 역사의 통증에 유독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 역사의 뒤안길에 버려지거나 방기된 민중의 노래를 발굴 현재화 하는 작업을 소명으로 하는 -포석의 생애와 매우 잘 어울리는 결을 가진-장인이다.

그를 만난 건 정민 작가 일행의 문학관 방문이 있던 4월 어느 비 오는 날 청주의 모처 선술집이었다. 문학관 방문을 마치고 청주에서 다시 회합한 자리에 마침 기회가 되어 함께 한 것이다. 공통의 관심사를 나누고 몇 순배가 돌아간 후 분위기가 무르익자 즉석에서 노래와 연주가 시작됐다. 그 자리에는 산오락회에서 노래를 담당하는 조애란 명창도 합석하여 한껏 흥을 돋우었다. 평소 수인사를 나누었으나 가까이에서 노래를 듣는 것 처음이었다. 노래 제목은 '우수리스크 편지', 억제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그날따라 비까지 내린 무심천변의 고즈넉한 호젓함과 우울이 취흥으로 작용한 탓이겠지만 전적으로 술기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생생한 감흥이었다. 전혀 예기치 않은 공간에서 소위 ‘게릴라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우수리스크는 포석이 10년 동안 러시아에서 활동하며 6년을 머물렀던 창작과 후진 양성의 산실인 지역이다. '육성촌(푸칠로푸카) 농민청년학교'와 '조선사범전문학교' 등 포석의 흔적과 체취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장소이다. 김강곤 씨가 ‘우수리스크 편지’를 노래하고 작곡한 것은 당시 독립을 위해 국외에서 헌신했던 선각자들의 고난의 삶과 애환을 민족의 보편적 정서로 환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내게는 그 노래가 오로지 포석에게 바쳐지는 포석만을 위한 '헌정곡(獻呈曲)'으로 들렸다. 그만큼 ‘우수리스크 편지’의 선율과 가사는 4월의 비처럼 가슴을 적셨다. 노래는 러시아 트로이카의 경쾌한 리듬을 타고 흘렀으나 가사는 한 편의 서사시로 지극한 슬픈 서정이었다. 혼자 듣기에 너무도 벅차 뜻 깊은 문학제에 초대를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공연된 추모곡은 예상대로 문학제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또 하나 오후에 진행된 문학제 ‘낭독극’은 포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열정 하나로 만든 땀의 결실이었다. 2달 동안 매 주 저녁시간을 할애하여 만든 역작이다. 전문예술인의 세련미와는 다른 투박함은 그 자체로 순수하고 진지한 감동이었다. 남의 손을 빌지 않고 회원들 스스로 포석의 작품을 읽으며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문학제가 가야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문학제가 끝나고 파장(罷場)처럼 어둠이 내린 ‘포석공원의 꽃과 초록이 가로등에 비쳐 더욱 화사했다.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포석이 두 팔 벌려 안고 있는 것은 ‘돌’이 아닌 ‘꽃’이었다. ‘가야할 길은 멀지만 돌을 품었던 그 멍든 가슴에 이젠 꽃을 안겨주어도 될 만큼 우린 당신의 희생 위에 서운한 대로 넉넉한 부족한 대로 괜찮은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만큼은 당신 포석의 날, 마음껏 자유와 행복을 5월처럼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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