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주 시인

최복주 시인

[동양일보]백 세 되신 시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5월엔 명절이 많으니 가족들과 잘 지내라 하신다. 그러고 보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을 명절이라 하신 모양이다. 명절이라니, 난 생각지도 못한 멋진 말씀이다.

며칠 전 친정아버지 산소 벌초를 하고 1박 2일 가족모임을 했다. 친정에 가면 네 가족이 모인다. 멀리 미국과 중국에 있는 가족과 특별한 상황에 놓인 가족을 제외하고 가능한 가족들은 모두 모인다.

두어 시간 걸려 숙소에 도착하여 방을 정해주고 여장을 풀었다. 잠시 낮잠을 자고 일어나 해변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물을 보자 첨벙첨벙 놀기 시작했다. 바닷가 솔숲에 앉아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어른들은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어느새 오십대가 되었다. 그동안 더 자주 만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30여 년 한집에서 살다가 각자 짝을 만나 일가를 이루고 살아온 지 또 20여 년이 흘렀다. 각자 살아온 삶의 무늬가 다양하겠지만 어린이로 돌아가 오롯이 엄마의 자식으로서 시간을 가졌다. 그저 마음이 편하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이해하고 받아주고 감싸주는 것이 피를 나눈 형제라서인가?

여자들이 모이니 당연히 시집 식구들 이야기가 화제로 오른다. 나야 외며느리로 동서가 없어 동생들이 나누는 동서 이야기에 끼어들 수조차 없다. 동생들 대화의 결론은 “언닌 좋겠다, 혼자라서.”이다.

나의 동생들은 막내며느리로 시집을 갔다. 그간 살면서 위 동서들과 불협화음이 가끔 있었던 것 같다. 생판 모르던 여자들이 결혼으로 인해 맺어진 가족이니, 모든 게 낯설고 어설플 것이다. 그러니 조금씩 서로 배려하면 될 듯한데 그게 그리 말처럼 쉽지 않은가 보다.

그런데다 예전의 농경사회에서의 미덕들은 첨단 시대의 경쟁사회에 밀려 고부간이든 동서 간이든 가정불화를 해결하는 덕목이 되지 못한다. 욕심이 많은 여자들은 잔꾀를 부려 이기적인 자세를 드러내는 것 같다. 자기의 입장만 내세우지 말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생각으로 이해하면 안 될까. 내 감정, 내 기분으로 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가족관계에서도 기본예절을 지켜야 한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젊어서 내가 쓴 인생의 편지가 노후에 나에게로 반드시 답장처럼 돌아온다. 내가 그 답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오늘 당장 겸손해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내 답장을 떳떳이, 당당히 받아야 할 테니까.

그러나 인간은 감정의 동물, 어른이 했던 서운한 말들,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서 현실이 괴로운 것이다. 공통점이 많은 두 동생이 밤늦도록 쏟아내는 대화를 들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보았다. 나는 외며느리라서 오히려 홀가분한 생각이 들었다. 감정의 갈등을 겪을 필요가 없어서 차라리 행복하게 여겨야 할 듯하다.

남과 가족이 된다는 것!

무엇이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어 가는가. 사랑으로 가족이 되었으니 고부간에, 동서 간에, 시누올케 간에 서로 사랑할 수 없을까. 동서가 없는 내가 뭘 알까마는 그래도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친형제처럼은 아니더라도 의형제처럼 사랑할 수 없나 하고...... . 결코 남이 아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친형제를 만날 때 반갑고, 헤어질 때 서운한 것처럼 시댁 식구들과의 만남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정마다 모두 정다운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관계가 힘이 들 때 사랑을 선택하라’는 헨리 나우웬(네덜란드 출신의 신부, 작가)의 말을 다시금 새겨보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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