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석 시인

한인석 시인/전 제천문인협회 회장

[동양일보]고향 집 마당 가에는 복스럽게 자란 댑싸리가 빈자리를 찾아서 사열 하듯 줄지어 서 있다.

굳이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어디서 날아왔는지 틈새를 찾아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연록의 무성한 잎으로 적당히 살이 오른 통통한 아이처럼 잘도 자라고 있다.

어릴 적 마당 쓰는 일이 싫었지만, 가끔 마당을 쓸 때마다 동전을 한닢 씩 줍는 재미에 일찍 일어나 그 넓은 마당을 쓰느라 땀을 쏟았던 적이 있다.

아버지가 일부러 떨어뜨려 놓았다는 사실을 안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안 일이지만….

지금은 댑싸리비를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댑싸리로 만든 빗자루보다 더 질기고 오래가는 대나무비와 싸리비, 플라스틱비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당을 쓰는 데는 무용수 허리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댑싸리비만 한 것이 어디 또 있을까?

마당 가에 자라는 댑싸리는 비질할 때 씨가 떨어져 돌 틈에서 겨우내 잠들어 있다가 이른 봄 푸릇푸릇 싹을 틔우면 실한 놈만 듬성듬성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솎아내야 한다.

그래야 남은 것이 가지를 잘 뻗어 빗자루로 손색이 없을 만큼 실하게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아무리 가물어도 물을 주지 않아도 되고, 거름도 주지 않아도 되고, 농약은 물론 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돌봐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도 자라는 것이 토종 댑싸리의 끈질긴 생명력인가보다.

여름내 풀벌레의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주던 무성한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키가 훌쩍 커버린 댑싸리는 잘라서 말려두었다가 빗자루를 만든다.

서너 대롱이 한데 묶여 빗자루로 다시 태어나면 부지런하고 깔끔한 사람 곁에서 사랑을 받으며 제2의 생을 시작하게 되는데 봄이면 꽃잎을 쓸어 향기를 모으고 여름이면 오물을 쓸어 악취를 날려 버리고 가을이면 낙엽과 나락을 쓸어 쓸쓸함과 풍요로움을 함께 안겨주며 겨울이면 하얀 세상에 길을 만들어 주지 않는가.

사계절 아침저녁으로 일만 하다가 닳고 닳아 쓸모가 없어지면 불쏘시개로 아궁이에 들어가 등을 따습게 해 주며 생을 마감하던 댑싸리. 살면서 이처럼 곁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인데도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것은 없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아이들도 댑싸리처럼만 자라 준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시험지옥에서 허덕이는 아이들 눈치 보느라 큰 소리도 못 내고 덮어주고 감싸주다 보니 버릇없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자유롭게 풀어 놓는다고 해서 댑싸리처럼 스스로 자라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닐 테고 매 순간 도약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그저 진정한 사랑만이 오진 거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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