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연 수필가

이시연 수필가

[동양일보]유난히 뜨거웠던 지난여름 어느 날, 지인을 따라 서산 다육이 농장으로 향했다. 그곳엔 처음 본 각양각색의 식물들이 제각각 이름표를 달고 나를 맞았다. 아기 손톱만큼 작은 잎부터 제법 커다란 잎사귀까지 저마다 태양을 향해 뜨거운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일반 식물과는 달리 다육이는 햇빛에 달달 볶아야 한다. 더이상 목마름에 견딜 수 없어 제 몸에 달린 잎사귀의 수분을 짜내어 생을 이어가게 만들어야 비로써 명품 다육이가 탄생한다. 동글동글한 잎에 한가득 복이 들어있을 듯한 방울복랑, 동화책 속의 마법사같이 신비로운 보랏빛을 자랑하는 흑법사, 금방이라도 전장에 나갈듯한 창 종류들이 내 눈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다육이는 키우는 사람의 의지대로 자란다. 강건하게 키우고 싶으면 척박하고 가혹하게 환경을 만들어 주고 울창하게 키우고 싶으면 물도, 온도도 일정하고 편안하게 해주면 된다. 다육이를 보면서 나를 세상의 화분에 심어놓은 신을 생각했다.

지금껏 그리 녹록하지 않던 삶이 대부분이었던 내 생의 환경은 신의 의지였을까. 강건하고 세차게 살아가라고. 그래서 그토록 추위, 더위, 목마름에 가둬놓고 지켜보고 있던 걸까. 때로는 ‘신이시여 이 정도 했으면 됐습니다’ 하고 소리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 몸을 구성한 잎사귀를 말려 눈물이 되도록 쥐어 짜댔다. 그토록 나를 가혹하게 달달 볶아서 당신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요즘 들어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인이 골라준 다육이를 우리 집 베란다에 옮겨놨다. 갈 때마다 하나씩 둘씩 옮겨온 화분이 어느새 여남은 개다. 뜨거운 여름에도 한눈을 꾹 감고 물주기를 참아낸 덕분에 가을 이슬에 어느덧 통통해진 잎사귀로 나를 기쁘게 했다. 타들어 가는 목마름으로 내 손길을 기다리는 다육이의 안쓰러움을 잘도 참아낸 내가 뿌듯하다.

가을 햇살을 먹고 기력을 보충한 다육이들에게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이젠 추위와의 싸움이다. 11월은 그럭저럭 견뎌냈으나 12월 사나운 한기에는 결국 내가 두 손을 들었다. 베란다 밖에서 공중 부양했던 화분들을 안으로 이사시켰다. 그날 밤엔 세찬 겨울바람에도 안도감과 함께 내 가슴엔 훈풍이 도는 듯했다.

한동안 다육이는 거실 밖 유리문 뒤에서 비슬비슬하다가도 내가 가끔 바라보면 힘을 내어 웃어준다. 작년에 실직한 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화가 치밀었다. 평생을 바쳐 일해온 내게 조직은 지켜주지 못하고 밖으로 내몰았다. 한참 동안 그 회사라는 우물 속이 너무 그리웠다. 축축하고 고만고만한 인생들의 아옹다옹 속이지만 그 울타리에서 떨구어졌다는 상실감에 몸서리쳐진 시간이 아팠다.

아마 그 뜨거운 여름쯤이었을 게다. 웅크리고 찌그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크고 깊게 숨을 몰아쉰 것이. 뜨거운 태양을 맨몸으로 참아내고 몸 안의 열정을 다 태우는 다육이를 만나고부터라는 것을. 뜨겁고 목말라야 더 강건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다육이를 본다. 여름의 태양도 가을의 이슬도 그리고 겨울의 서릿발도 견디어야 새봄의 희망을 느낀다는 것을. 다육이도 나도 이 겨울이 마냥 길고 춥다. 물을 참고 추위를 참고 유리문 뒤에서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린다.

아침마다 태양이 조금씩 빨리 나오더니 새해가 밝았다. 세상은 아직 눈보라 속에서 떨고 있지만 땅 속 그 어디쯤에서는 새 생명을 피워낼 작은 씨앗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으리라. 봄 이란 그런 것 같다. 거대한 얼음을 뚫고 가녀린 생명이 솟아 나온다. 다 죽었다고 생각한 마른 가지에서도 초록을 피워낸다. 검버섯 오른 주름진 얼굴에도 새악시 볼에 퍼진 부끄러움이 꽃핀다.

신의 정원에서 씨앗으로 싹 틔워 살아온 우리다. 나를 키우고 있는 화분이 큰지, 작은지 아직은 잘 모른다. 그 화분 속의 토양에 영양분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가 다육이들을 명품으로 만들고 싶어 하듯이 신도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걸어가는 앞길이 가시밭길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신은 더 큰 뜻을 품고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더위, 추위, 목마름에 빠져 아우성쳐도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라고 나를 위해 인내하고 계시리라.

새봄이 오면 나의 다육이들도 다시 베란다 밖 하늘 깊게 부양시키겠다. 한겨울을 웅크리고 살아낸 다육이들이 새로운 잎사귀들을 밀어 올리겠지. 뿌리는 더욱 강건하게 줄기는 로마 신전의 기둥처럼 튼튼하게 화분을 버틸 것을 희망하면서. 나의 생에도 새봄이 오면 내 인생의 이 막도 좀 더 밝게 펼쳐질 것이다. 계획했던 직업도 잘될 것이고 못다 이룬 심리학 박사과정에 대한 꿈도 현실이 되어 캠퍼스를 거닐 것이다. 힘겹게 나와의 싸움을 견디고 있는 지금, 신께서 바라보신다면 ‘나 여기 잘 있어요, 이만하면 제법 마음에 드시나요’ 하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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