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옥 수필가

김정옥 수필가

[동양일보]온통 하얀 꽃 잔치다. 무심천변에 조팝나무꽃이 만발하더니 거리엔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졌다. 뒷산에도 아카시꽃으로 하얗다. 계절의 여왕이 순백으로 치장하고 떠날 채비를 하는 모양이다.

아침나절 어영부영하다 보니 벌써 점심때가 되었다. 마음에 점 하나 찍자는 점심에는 국수가 제격이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 “국수나 해 먹자.”라고 하셨지만 난 국수가 좋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멸치 국물에 말은 잔치국수는 말할 것도 없고, 추운 겨울 따끈한 바지락국물과 어우러진 칼국수도 놓치면 서운하다. 더운 여름 걸쭉한 콩물에 말은 콩국수도 자주 찾는 메뉴이고, 가쓰오부시 육수에 송송 썬 파 한 스푼 넣고 무즙 듬뿍 넣은 메밀국수도 빼놓을 수 없다.

가까운 조선의 역사를 보면 국수는 결코 아무나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임금이나 양반, 권력자와 부자의 점심상에 주로 국수가 올랐다. 일반인들은 대개 하루에 두 끼만 먹었기 때문에 국수 먹을 기회조차 드물었다. 밀을 재배하지 않은 터라 한반도에서 국수는 한동안 부자들의 간식으로 여겼다. 이렇듯 예전에 국수는 귀하신 몸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원조 밀가루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국수는 서민들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귀하신 몸이 시대에 편승해 친숙한 몸이 된 것이다.

국수는 나눔이다. 조선시대에 중요한 경사가 있는 날이면 국수를 함께 먹을 뿐 아니라 선물을 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는 잔칫상 장만을 위한 나눔의 미덕이자 장수와 평안함이 깃들라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외손자 돌 때 알록달록 색깔도 고운 오색 국수를 선물로 드렸다. 오신 분들께 안녕과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예전에는 백일, 돌, 혼례, 회갑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관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 국수였다. 조상들은 국수를 장수나 오랜 인연을 기원하던 상서로운 음식이라 여겼다. 그래서 잔치가 있는 날이면 국수를 대접했던 것이다. ‘잔치국수’라 불리는 이유이다.

잔치국수를 해야겠다. 내장을 뺀 다시 멸치로 육수를 낸다. 뽀얀 국수 면발을 끓는 물에 넣어 흐물흐물 제 몸을 가누지 못할 때까지 익힌다. 국수 한 가닥을 입속에 넣어 잘 익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절차이다. 찬물에 서너 번 샤워를 시켜 소쿠리에서 물기를 뺀 다음 큰 대접에 살포시 사려 놓는다. 애호박을 송송 채 썰어 들기름에 달달 볶아 애호박눈썹나물을 만들고 계란을 얇게 부쳐 지단을 만든다. 김 가루도 있어야 하고 갖은양념을 넣고 간장을 만들면 준비 끝이다. 신 김치와 곁들이면 한 끼 식사로 모자람이 없다.

국수 먹을 때는 오감이 동원된다. 찰랑거리는 육수와 하얀 국수사리, 그 위에 얹은 색색의 고명에 눈이 먼저 먹는다. 후루룩후루룩 면 들어가는 소리에 귀가 열린다. 구수하고 간간한 맛이 어우러져 미각을 돋운다.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면발의 식감이 절정이다. 코는 벌름벌름 벌써 작업을 시작했다. ‘행복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이 다량으로 들어있다는 것을 몸이 안다.

마음에 점 하나 찍기는 진즉에 물 건너갔다. 하지만 든든한 잔치국수로 행복호르몬을 한아름 쟁였다. 게다가 장수를 상징하는 긴 국숫발에 명命이 돼지 꼬리만큼 길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잔치국수도 먹었으니 슬슬 나가서 꽃 잔치판에서 놀다 오자. 이제 앞으로 남은 삶도 잔치처럼 한바탕 즐기면서 거방지게 살아 내자. 어차피 인생은 신이 내린 잔치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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