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봉 시인

이은봉 시인

[동양일보]2018년 여름 직장에서 퇴직했다. 그런 이후 차령산맥 기슭에 조그만 밭을 마련해 자잘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이름을 부채밭이라고 지었다. 요즈음에는 날이 너무 가물어 지하수를 퍼 올려 밭에 물을 주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이다. 자연의 도움이 없으니 올해 농사는 별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지하수를 퍼 올려 작물들에게 물을 주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다. 지나친 가뭄 때문에 감자도 제대로 크지 못하고, 고추도 제대로 크지 못하고, 토마토도 제대로 크지 못한다. 상추농사도 고라니들이 너무 좋아해 엉망진창이다.

내가 키우는 작물 중에는 꽃들도 있다. 작약도 키우고, 목련도 키우고, 구절초도 키우고, 접시꽃도 키우고, 은방울꽃도 키운다. 이들 꽃 중 올해 들어 내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작약과 목련과 접시꽃이다. 올해도 작약과 목련은 꽃을 피우지 못했다. 봄 날씨가 너무 추웠기 때문인 듯싶다. 그것은 물론 이곳 부채밭이 차령산맥 기슭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산속인 이곳 부채밭은 세종시나 공주시에 비해 늘 평균기온이 2~3도 정도 낮다. 하지만 접시꽃은 지금 한참 피고 있다. 밭 둘레에 핀 각종 색깔의 접시꽃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황홀하게 한다.

최근 들어서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변화된 생태환경을 걱정한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정말 기후 위기가 맞는가. 올해는 봄이 다 지나가고 여름이 오도록 비가 안 와 걱정이다. 어제 오후에는 하늘이 흐리고 천둥소리가 들려 혹시라도 비가 오려나 싶어 수차례 일기예보를 확인한 바까지 있다. 하늘은 끝내 빗방울 한 점 흘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러다가 전국의 농사를 망치고 말까 싶어 근심이다. 장마철이나 되어야 비가 올 것 같다는 불안감이 그치지 않는다. 장마철 자체까지 없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다.

형편이 이런데도 언론은 올해의 혹독한 가뭄에 관해서는 가사를 쓰지 않는다. 2022년 6월 2일 기상청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달에는 전국 평균 강수량이 5.8mm에 그쳤다고 한다.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5월 기준으로 가장 낮은 강수량이라는 것이다. 평년의 강수량인 102.1mm에 비하면 올해 강수량이 6% 정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강수일수도 3.3일에 그친 것으로 확인이 된다. 사실상 지난 5월에는 비가 내린 날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6월이 시작되고 여름이 출발했는데도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는 여러 날 째 산불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예년 같았으면 한바탕 장맛비가 쏟아질 만도 한데 말이다. 산불은 본래 늦겨울이나 이른 봄에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나는 것 아닌가.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한 초여름이거늘, 경상남도 밀양에서 산불이 크게 번진 것은 암만 생각해도 황당하다. 신록이 우거지기 시작한 초여름, 그것도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큰 산불이 나다니! 옛날 같았으면 부덕한 임금님 탓이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지금은 그저 기후위기나 걱정하고 있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이런 자연재해 또한 인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숲과 농토를 까뭉개며 도시를 만들고 시멘트빌딩을 짓는 일에 급급한 것이 오늘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자연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질리 있겠는가. 순환하지 않는 자연은 이내 파괴되고 붕괴되기 마련이다. 자연의 질서와 함께하지 않는 삶 또한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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