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춘화 시인

[동양일보]충주시 중앙탑면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비가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시 중단되고 있지만, 충주문화원은 매년 시민을 대상으로 중국에 있는 고구려유적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몇 년 전 유적답사단 일원으로 중국을 다녀올 수 있었다.

답사지역은 심양과 요양, 환인, 집안, 통화였고 방문지역 모두 의미와 역사성이 있지만 그중 기억에 오래 남는 곳이 있다.

처음 찾은 곳은 삼국사기에도 나오는 회백색 석회암으로 태자하 절벽을 이용해 쌓은 고구려산성 백암성이었다.

올라가는 도중 만난 풀 한 포기와 나무 한 그루도 전혀 낯설지 않은, 그냥 ‘우리나라 우리 땅이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비록 다 허물어져 있지만 생생한 우리 역사인 만주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다음 일정으로 새벽 4시쯤 망강루고분군을 찾았다.

주몽의 무덤이라 추측할 뿐 과수원 한 귀퉁이 널린 돌무덤 흔적. 가져간 간단한 제례 상으로 무덤 주인에게 예를 올렸다.

과수원주인에게 돈을 주고 들어왔음에도 지방신문 기자가 얼씬거린다고 시비가 일기 전 서둘러 내려가자고 했다.

우리 역사를 알고자 하는데 눈치 보고 홀대받는 비참함과 울분을 안고 돌아섰다.

그리고 찾은 오녀산성에서 우리 민족의 자랑인 온돌 흔적을 발견한 기쁨과 놀라움에 우리의 역사 찾기는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관광객들로부터 돈을 벌면서 동북공정으로 남의 나라 역사를 말살하려는 중국. 주렁주렁 붉은 천으로 둘러놓고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없는 불친절한 태도와 그 표정들...

집안박물관은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임에도 박물관 직원들은 촬영은 물론 메모도 금지하라고 했다.

드디어 장수왕이 광개토왕 업적을 기린 광개토 왕릉을 마주하리라는 기대감은 그 웅장함이 가까워질수록 유리 벽에 막혀버렸다.

고구려의 영역확장 과정과 당시 사회상 및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내용이 담겨있는 귀중한 자료이고, 고구려 정체성을 정확한 문체로 밝혀주고 있지만 이렇게 중국 땅에 결박당하고 있는 모습에 마치 내가 갇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나하고는 상관이 없는 역사 교과서 한 페이지일 뿐이라고 치부했던 고구려.

그 고구려가 용맹과 기개가 넘치는 내 조상이고, 그 피가 흐르는 후손임이 자랑스러웠다.

4박 5일 동안 빡빡했던 일정이 전혀 힘들지 않았고, 언제고 다시 한번 찾아가 좀 더 자세하게 챙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주로 돌아와서 충주고구려비를 다시 찾아갔다.

이 비(碑) 역시 건물 안에 갇혀 있긴 마찬가지지만, 눈을 감고 잊혀 있던 기억을 찾아 말을 타고 달려본다.

'기억 찾기' -충주고구려비-

'압록강 지나 대륙을 넘나들고/호연지기를 키우던 우렁찬 말발굽/그 많은 기억 중 누가, /거친 숨소리 찾아 이어줄까//퇴적된 시간을 뒤적이던 약삭빠른 놈/내 등판의 비기를 읽어냈고/제 치부 드러날까 등짝을 후려치더니/비문 다 지워질 때까지 이어지던 가혹한 고문//백비 되어 핼쑥하니 이정표나 되었는데/예성인의 눈썰미가/안색 살피고 맥을 짚더니/솜방망이 두드려 빈 기억 불러내며/구석구석 X레이까지 찍어가더니/설왕설래 말도 많던 판독들//천오백 년 잠겨있던 문을 여는 열쇠/'고려대왕'/그 단어 하나가/잊혀져가던 왕들을 불러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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