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동양일보]시계를 박근혜 정부로 돌려보자. 2013년 9월에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 자식 논란으로 물러나는 데 이어 당시에 서울중앙지검의 국정원 댓글공작 수사팀장이던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도 덩달아 옷을 벗게 된다. 이 사건으로 검찰은 사실상 초토화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극심한 내홍을 겪게 된다. 이듬해인 2014년 3월이 되자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한 서울시의 공무원이 간첩이라는 증거가 조작되었음이 밝혀져 국정원이 사과문을 낸다. 그 이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증거가 조작된 사실이 있냐”고 직접 물었을 때 남 원장은 “절대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조작 사실이 밝혀지자 남 원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잃고 그 해 연말에 경질된다. 그 해 여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작성된 “십상시가 존재한다”는 문건이 폭로되고 그 불똥이 박지만의 육사 동기인 이재수 기무사령관에게 튀어 그해 10월에 전격적으로 사령관이 경질된다.



박근혜 정부 초기에 민정수석실, 국정원, 검찰, 기무사에서 경천동지할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후기 권력의 성격을 결정해 버린다. 믿을 만한 권력기관이 차례로 허물어지면서 청와대는 모든 국사를 만기친람(萬機親覽)했다. 중요 정보는 권력 기관의 장이 아니라 정권이 배치한 비선을 통해 청와대로 유통되었고 중요 인사는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이 직접 챙겼다. 그해 세월호 사건과 북한 무인기 출몰 사건이 겹치면서 모든 정보·수사 기관의 요원들은 기관장이 아니라 오직 청와대만 쳐다보았다. 기관의 영(令)이 서지 않게 되자 단명으로 끝난 기관장에 이어 소신 없고 직언할 줄 모르는 기관장들이 그 뒤를 이었다. 모든 권력은 청와대로 올라가 지붕이 무거워 지는 기분수형 권력이 위태롭게 국정을 이끌어 나갔다. 결국 무거워진 권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2016년에 정권이 무너졌다.



윤석열 정부가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기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5월 말에 새 정부 김규원 국정원장이 임명되고 나서 6월에 멀쩡하게 임명된 국정원장 비서실장이 명령이 난 지 두 시간 만에 뒤바뀌었다. 원장이 자기 비서실장조차 제대로 임명할 수 없는 내부 사정이 드러난 데 이어 1급 이상 27명 전원이 대기 발령이 났다. 한 마디로 초토화된 거다. 같은 시기에 해수부 공무원 북한군 피격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해경청장과 간부 정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28명의 경찰청 보직 인사가 이미 발표가 난 뒤에 7명이 뒤바뀌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경찰청의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규탄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찰은 이미 특수통에 의해 장악되었고 검찰총장이 공석인 가운데 법무부가 직접 검사 인사를 챙긴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박근혜 정부 초기에 권력기간의 내부 균열의 재현이다. 게다가 이런 사건의 여파는 “모든 것은 윤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다”는 신호를 발신하여 정부 시스템의 경직화를 초래하고, 권력은 대통령실로 집중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도 후보 시절에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한다”고 공언한 지도자들이다. 그러나 지금이 제왕적 형태가 상부 권력의 비대화로 인한 제왕적 권력 행사의 재현일 뿐만 아니라, 회복탄력성과 지속성이 약한 가분수 권력으로 가는 길임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적어도 산하기관의 장의 인사의 자율성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어떤 공직자가 기관장을 따르겠는가. 권력 핵심부에 줄을 대는 사람이 영전하는 데 말이다. 결국 자율이 없고 소신이 결여된 공직사회는 윤석열 정부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작금의 혼란이 예사스럽게 비춰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바로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권위에 의존하는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거버넌스의 문제다. 특히 권력기관으로부터 그 신호가 나타났다는 것은 비상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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