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경 수필가

황혜경 수필가

[동양일보]수년 전 영화‘라라랜드’를 보았다. 가슴이 아려서 한 동안 멍하게 살았다. 주인공 남녀는 가지 있던 것이 많지 않아도 지치지 않고 하루하루를 도전하면 살아낸다. 이루고자 하는 꿈으로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두 사람은 공유한다. 각자의 꿈을 위해 치열하게 살던 연인은 사랑과 꿈 사이에서 갈등이 커지자 아쉽게도 각자 꿈을 선택한다. 유명 배우로 한 가정의 엄마로 꿈을 이룬 미아는 어느 날 저녁 남편과 외식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우연히 한 재즈 바에 들르게 된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옛사랑을 마주한다. 재즈 연주자인 세바스찬.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세바스찬은 예전에 같이 불렀던 자작곡을 연주한다. 그 곡이 연주되는 동안 영화는 그들이 부부가 된 현재를 보여준다. 지나간 사랑과 인연이 닿았을 경우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주 짧은 순간 영화 속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예전에 TV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A와 B 중에 순간에 A를 선택했을 경우 끝까지 보여주고 마찬가지로 B를 선택했을 경우도 끝까지 보여준다. 선택의 결과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져 흥미로웠다. 어린 나이였지만 선택이 중요하고 선택의 괴로움과 무게감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선택을 할 때 너무 괴로웠다. 그리고 신중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우유부단해졌다. 선택을 하면 나머지 하나의 길은 지워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 길을 생각한다. 현실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가슴이 아파서 잠 못 이룬다. 내가 그 기회를 버린 거라고 자책한다.

마치 나뭇가지에 잎사귀가 무성한 것처럼 선택의 순간도 일상에서 무수히 많다. 푸르르던 날에 고민을 위한 고민을 하느라 무수한 밤을 하얗게 보냈다. 이제는 사과나무 한 그루에서 어느 가지에든 똑같은 사과를 맺는 것을 안다. 나뭇가지 위치에 따라 일조량의 영향으로 크기가 좀 다를 수 있어도 사과를 얻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혹시 벌레 먹은 사과를 얻더라도 벌레라는 켄텐츠가 다른 사과보다 있으므로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 개인적인 생각이다.

꿈을 잘 지키고 그 열정이 식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하든지 길은 연결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제일 빠른 길을 알아채고 달린다. 가끔씩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갖고 후회와 자책을 한다. 이제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어떤 선택을 하던 미래에 맛보는 사과의 맛은 같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로 가지를 어느 쪽으로 뻗을지 너무 큰 선택의 무게감과 괴로움을 영화를 보며 많이 내려놓았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자책이나 아쉬움 등을 많이 지울 수 있었다. 선택의 괴로움과 무게감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다시 영화 속으로 길을 걸어보면 미아는 세바스찬과 깊은 눈인사만을 나누고 다시 유명 배우로 한 가정의 엄마로 돌아온다. 세바스찬 역시 꿈을 이룬 연주자로 남는다. 귓가에 맴도는 아름다운 OST도 인상적이었고 재회 장면은 내 상상을 그대로 실현한 장면이라 두고두고 생각난다. 꽤 오래전 개봉한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겐 그냥 스치는 영화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하루가 영화 장면인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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