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정 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교수

손민정 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교수

[동양일보]한국에서 음악교육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어느 중국인 유학생과 여러 번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그 학생은 늘 한국의 음악교육계를 부러워했다. 한국은 중국과는 달리 음악이라는 교과목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 때문에 음악교육학 및 음악교육계 전반이 매우 발전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네 음악교육의 현실은 그 부러움을 얻을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 한다.

싸이, BTS, 블랙핑크를 비롯한 K-pop 가수들이 유례없이 전지구적인 인기를 얻고 있고, 클래식 부분에서는 손열음, 조성진, 임윤찬 등이 챠이콥스키 콩쿨, 쇼팽 피아노 콩쿨,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쿨 등의 국제적인 대회에서 기염을 토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음악대학 및 음악교육대학에서의 커리큘럼 역시 그 어떤 나라의 상황에 뒤지지 않는다. 초등 및 중등 교원으로 임용되는 교사들의 우수한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과연 우리들은 음악이라는 교과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결코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두 가지를 묻고자 한다. 첫째는 고등학교 다니면서 음악 시간에 자율학습을 한 경험이 없는가이며, 둘째는 음악에 관한(또는 음악을 통해) ‘진지한’ 고민을 공유한 적이 있는가이다. 아마도 첫 번째 질문에는 쉽게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대답은 ‘그런 경험이 있다’일 것이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학교 행사로 인하여 구멍 난 타 교과목의 진도를 위해 음악이라는 ‘부차적’인 교과목의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두 번째 질문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음악은 으레 즐겁게 노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은 정말로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한낱 음악 따위(!)가 무엇이길래 역사를 논하며, 철학을 논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인류는 탄생 시점부터 음악을 만들었다. 그저 즐겁기 위해서만 음악을 만든 것이 아니다. 최초의 악보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문자를 해독해 보자면, 기원전 1,400년경의 음악은 다분히 ‘영적’이었다. 때로는 사후의 세상을 노래했고, 때로는 자손을 얻기 위한 염원을 노래했다. 음악에는 특별한 영적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더라도 음악의 엄청난 힘을 목격할 수 있다. 과연 ‘무궁화가’, ‘애국가’를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없었다면 삼일운동의 현장이 그만큼 강렬할 수 있었을까 싶으며, 과연 ‘광야에서’, ‘상록수’를 비롯한 민중가요가 없었다면 민주화의 열망을 고스란히 공유할 수 있었을까 싶다.

음악의 본질을 연구하고자 했던 미국의 음악학자 메리엄(A.P. Merriam, 1923-1980)은 음악의 3요소를 이렇게 말했다. 첫째는 ‘소리’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겠지만, 소리가 없이는 음악이 될 수 없다. 둘째는 ‘가치’이다. 음악은 인간이 표현하려고 하는 수많은 생각들을 고스란히 담고자 한다. 음악이 오락거리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음악은 의미를 담고자 하는 인류의 매우 소중한 문화자산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음악의 세 번째 요소는 ‘행동’이다. 우리가 음악을 만들거나 들을 때 마냥 수동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음악의 목적과 기능은 다양해서 그 상황에 따라 행동이나 몸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응원가를 부를 때에는 몸과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구호를 외치며 부르기 마련이며, 연인을 향해 발라드를 부를 때에는 사랑의 마음을 담은 눈빛과 표정을 하게 되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들을 때에는 작품의 정교함과 엄숙함에, 그리고 장애를 극복한 한 인간의 예술적인 의지에 숙연함을 가지며 정숙함을 유지한다.

메리엄이 정리한 음악의 3요소에 동의한다면, 음악이 얼마나 인간의 삶에 있어서 본질적인가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음악계의 우수함이 일부 천재들의 성공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음악 교과목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와 바람, 그리고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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