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동양일보]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육거리 시장 골목 구석진 한쪽,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국수를 써는 할머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자를 댄 듯 간격이 똑 고른 국수 가닥에 노인의 오랜 경력이 묻어났다. 이마엔 세월이 새긴 잔물결 위로 송골송골 땀방울이 고여있다. 국수를 써는 손길은 노련했지만, 힘이 달리는 듯 가끔 긴 한숨을 토해내 내 마음이 짠했다.

검버섯이 듬성듬성 솟은 두툼한 손등엔 고단한 세월의 더께가 얹혀있다. 저 손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자식들을 키워냈을 것이다. 내 나이에 견주어 80 고개를 넘어선 분으로 보였다. 그 나이에 자식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흘린 땀을 수건으로 훔치고 곱게 썬 국수를 비닐봉지에 나누어 담아 좌판에 올려놓는다. 물끄러미 서 있는 내게 한 봉지에 3,500원인데 다섯 명은 먹을 수 있으니 사 가라고 권한다. 얼마 전, 안면도에 들러 14,000원짜리 해물칼국수를 사 먹은 걸 생각하니 기막히게 싼값이다. 안면도에서 먹은 칼국수와의 비교는 적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곳에 먹은 칼국수엔 오징어, 게, 새우 등 해물이 듬뿍 들어있었고, 에어컨 잘 나오는 방에서 손님 대접받으며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다. 재료비, 인건비, 시설비를 따져 적정가를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콩가루를 넣어 아주 맛있다는 말씀도 귀에 솔깃하여 칼국수 한 봉지를 샀다. 나는 칼국수를 좋아한다. 어릴 적 친정어머니께서는 집에서 농사지은 밀을 방앗간에서 곱게 빻아 만든 밀가루로 칼국수를 해주셨다. 이마에 땀이 나도록 반죽하여 홍두깨로 얇게 민 다음, 날렵한 칼솜씨로 국수를 써는 모습은 예술이었다.

가마솥에 국수를 삶아 실파, 고추 송송 썰고 깨소금과 고춧가루에 참기름까지 넣은 양념간장을 넣은 칼국수는 일미一味였다. 금방 조물조물 묻힌 열무 겉절이까지 곁들이면 먹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결혼하고 첫아이를 가졌을 때, 시어머님은 입덧하는 내게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하셨다.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친정어머니의 맛과 흡사한 칼국수를 해주셨다. 맛있게 칼국수를 먹는 모습을 보신 시어머님은 그 후에도 가끔 칼국수를 해주셨다. 칼국수는 훗날 추억의 화제가 되어 고부간에 애정을 꽃피웠다. 지금도 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고인이 되신 두 분 어머님의 손맛이 그립다.

아마도 칼국수엔 많은 사연이 있을 것이다. 쌀이 귀하던 시절, 칼국수는 끼니를 이어가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지금은 추억의 음식이 그리울 때, 기름진 음식과 영양가 높은 음식이 식상할 때 가끔 찾는 음식이지만, 멀건 국물에 칼국수 몇 가닥을 넣어 배를 채웠던 시절이 있었다. 맛으로 먹기보다는 양을 늘려 끼니를 해결하던 시절이었으니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겐 칼국수의 의미가 남다를 것이다.

코로나 이후 소비가 줄고 인건비가 늘어나 소상공인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식자재 가격이 올라 주부들은 시장 가기가 겁이 난다고 한다. 물가는 뛰고 경제가 어려워져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던 칼국수도 마음 편히 사 먹을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칼국수가 생각나면 육거리 한 귀퉁이에서 칼국수를 만드는 할머니를 찾아 두 분 어머니를 생각하며 칼국수를 사다 솜씨를 흉내 내보리라. 감히 두 분 어머니의 손맛을 따라갈 수 없겠지만 가족들이 내가 끓여준 칼국수에 맛 들여, 훗날 나를 기억하는 음식이 될 수 있도록 특별한 조리법을 고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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